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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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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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좌절을 경험한 그림 그리는 즐거움, 다양한 미술 교육 방식과 그들의 긍정적인 영향

그림에 흥미를 느낀 건 중학교 2학년 미술 시간이었다. 자신의 손을 데생하는 소묘 기초 시간이었는데 그림의 형태가 실제와 제법 비슷하여 미술 선생님께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칭찬을 듣자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내가 사물의 형태를 인지하고 묘사하는 능력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명암을 표현하는 건 능숙하지 않았지만 선을 더해 갈수록 점점 그림이 완성도를 갖춰가는 게 신기했다. 그러나 흥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드로잉이 끝나고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채색에는 재능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수채화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적절한 물 조절을 통해 원하는 느낌의 색채를 구현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여러 번 덧칠을 해버렸고, 잘해 보려고 할수록 그림은 얼룩덜룩 형편없어졌다. 미술 선생님은 채색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은 하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미술 시간은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아마 미술에 재능과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이미 학원을 다니며 사교육을 받고 있으리라 여기셨던 듯하다. 그렇다고 선생님께 방법을 물어볼 정도의 용기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을 텐데 그때 나는 수줍음 많은 사춘기 소녀에 불과했다. 수채화를 그리는 데 좌절을 맛보고는 결국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구나' 하고는 포기해 버렸다. 그림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영역으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학창 시절에 미술을 조금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갈망이 살아났다. 유홍준 교수님, 목수현 우정아 선생님, 이성원 교사님, 주리애 교수님, 김중석 화가님 등 여러 교육자분들의 다양한 미술교육이 나온다. 그들의 미술 교육은 편견이 없다. 미술을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여기지 않는다. 보다 많은 이들이 미술을 즐기고 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도록 도울 뿐이다. 유홍준 교수님은 예술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 미술사를 배울 수 있도록 여러 대안 공간을 다니며 강의를 하셨다. 한국 미술사 수업을 정식 교과목이 아닌 초청 강연으로 들을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교수님을 '거리의 미술사가'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강좌 중 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 경험을 토대로 라는 책이 나왔다. '시각의 혁명 없이는 손의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프랑스 미술평론가 알랭 주프루아의 격언을 토대로 미술 이론에 갈증을 느끼던 많은 학생들에게 단비같은 교육을 실천하신 것이었다. 돌멩이와 부러진 나뭇가지, 움직이는 지렁이로 만든 미술 작품, 서산의 이성원 미술 선생님은 자연을 캔버스 삼아 마음을 표현하는 '자연 미술'의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하얀 머리카락을 민들레꽃 같다며 후 불기도 하고 건물의 시멘트 벽에 동그랗게 난 구멍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워 뻥 뚫린 가슴을 표현하기도 했다. 자연 미술 시간엔 못 그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 그 자체가 모두 미술 재료가 되기에 따로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부담도 없었다. 아이들은 사각의 교실을 벗어나 즐겁게 창의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2019년 라는, 할머니들의 그림과 글을 엮은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순천의 그림책 도서관에서 실시된 그림 수업에서 시작되었다. 김중석 화가님은 어느날 순천의 할머니들에게 그림 수업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그림 수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글도 모르는데 무슨 그림을 그리냐는 것이었다. 화가님은 할머니들이 최대한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형을 이용해 사람을 그리는 방법을 선보였고, 할머니들은 이런 과정을 신기해하며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주변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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