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보석, 신안 천사섬 3] 천재의 섬 장산도
장산도는 이름처럼 산줄기가 섬 전체로 이어지는 섬이다. 장산면 도창 마을에는 인근 섬들로부터 세금으로 거둔 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원래 지명은 '쌀 창고'를 의미하는 도창이었으나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역사적 유래를 무시하고 멋대로 바꾸었다는 주민의 증언이다.
장산면 대리에는 장인걸의 6대손인 독립운동가 장병준의 생가가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8칸 겹집 사랑채가 나온다. 사랑채는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사랑채에서 다시 대문을 하나를 더 거쳐야 6칸 겹집 본채로 들어갔다. 본채는 5명의 의원·장관이 나온 집이라서 속칭 '5장관 집'이라고 불린다. 사랑채 대문 맞은 편에는 일꾼들이 기거하는 초가집이 있었다.장산역사문화관에는 병준이 주도했던 장산도 3·18 만세운동 전시실이 있다. 장진섭의 맏아들인 병준은 보성전문 법학과를 나와 니혼대학 법학과에 진학했으나 1917년 병을 얻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병준은 포양이라는 아호가 말해주듯 독립운동이나 가정 혼사 등에서 좌우를 아우르는 노선을 걸었다. 1927년에는 좌우가 합작한 신간회 운동에 참여했다. 그의 묘소는 고향인 장산면 대리에 있다가 2006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됐다. 장산도에 있는 원래 묘역도 보존되고 있다.병준의 아버지 장진섭은 병준 병상 홍재 홍염 등 네 아들을 서당에 보내지 않고 목포 서울 일본으로 보내 신교육을 받게 했다. 진섭은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적은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일본과 서울에 유학 보낸 자녀들의 학비를 조달하느라 형제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닌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아들 병준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일 때는 거처하는 방에 불을 때지 않고 냉골방에서 지낼 만큼 아들 사랑이 극진했다. 넷째 홍염은 1930년대 서울에서 항일 학생시위를 주도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아나키스트 조직에 들어가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장산역사문화관 앞에는 은목서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돼 있다. 은목서는 꽃의 향이 샤넬 No5.의 주원료로 쓰인다. 공원 한가운데 장홍염 선생의 흉상이 자리 잡고 있다. 독립투사의 향기가 공원에 가득하다.장산도가 '천재의 섬'으로 알려진 것은 진섭의 둘째 아들인 병상의 자손들이 고위 관직에 오르고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다. 철도공무원을 하던 병상은 직장에서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자녀들의 연필을 깎아주었다. 병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도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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