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국 개관 축하연에서 거사 김옥균 김옥균평전 김삼웅 기자
김옥균과 주도세력은 구체적인 거사 계획을 논의했다. 수구파의 눈을 피해 동대문 밖 탑골승방과 압구정변 등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준비를 하고, 김옥균은 박영효와 함께 병중의 유홍기를 방문하여 의견을 들었다. 개화파 형성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박규수·오경석·이동인은 이미 타계하고 유홍기만 생존해 있었다.
유홍기가"일본 공사가 귀임한 후에,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여 물정은 바다와 구름같이 동요하고 있으니 제군도 심히 위험하다 하겠다. 당면 계책으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일을 도모하는 것인데, 일본 정부의 정략을 제군은 깊이 알고 있는가" 하고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일본 정부가 물론 의사가 있는 듯 하지만, 설사 그들의 원조가 없더라도 우리들의 뜻은, 나라가 이미 배수무량의 절박한 지경에 달하였으니, 우리가 일본정부의 움직임을 기다릴 수 만은 없습니다. 마침 죽첨이 귀임할 때부터 그 기색으로 추찰하건대, 오히려 지나치게 과격해서 우리에게 재난이 덮칠 듯 하여 더욱 그러합니다. 운을 하늘에 걸로 사보국의 결의가 되어 있으니, 선생님은 아무쪼록 안심하시고 몸조리를 하시옵소서. "내정개혁 및 간신들을 제거하는 방책은 오로지 우리가 맡는다. 사건 발생 후 군대를 출동하여 폭발을 막는 것은 공사가 담당하기로 하고, 이것을 서약하였다.
마침내 1884년 12월 4일 저녁 예정대로 축하연이 홍영식이 총변으로 있던 우정국에서 열렸다. 홍영식은 후덕한 사람이어서 누구나 그를 믿었다. 따라서 그의 초청장을 받고 모두들 모였다. 단지 외교사절로 일본 공사 죽첨과 독일 총영사 젬부쉬 만이 병을 칭하며 불참하고 조선측 인사 중에는 후영사 윤태준이 숙직으로 불참하였다. 모인 사람은 총 19명이었다. 긴 책상 좌우편에 손님들이 앉고 책상 동쪽에 주빈인 홍영식, 서쪽에 박영효가 앉았다. 그러나 별궁에 불을 지르기로 한 당초의 계획이 마음대로 안 되었다. 별궁에 불이 잘 붙지 않아 자리에 앉아 있던 김옥균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귓속말로 보고함에 참석자들이 의심하였다.
김옥균은 찾아온 사람에게 우정국 옆 초가집에 불을 질러 정변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얼마 뒤"불이야"하는 소리가 나자 좌중이 소란해졌다. 이때 푸트 미국 공사가 좌중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의 속담을 이야기하였다. 그 내용은 어떤 사람이 침착하게 자기 집 벽을 어루만지며 벽이 차니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하면서 그곳에 모인 손님들에게 안심시키고자 하였다.8> , 11월 16일 조. 12> , 1884년 12월 4일 조.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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