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인물 100선 12] 의적 임꺽정
"백인의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은 흑인 스스로의 열등감이다. 복수하지 않고도 폭력의 악순환을 깨뜨릴 방법은 흑인 스스로 권리의식을 찾는 길이다."
임꺽정의 항쟁은 1559년에서 1562년 1월까지, 3년 간에 걸쳐 황해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체포되어 살해되었지만 지역적으로는 황해도뿐만 아니라 경기도·평안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에까지 파급되고, 부패 관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민심을 얻음으로써 많은 아전과 백성들이 임꺽정의 무리에 협조하여 관군의 진압이 쉽지 않았다. '의적 임꺽정'의 실체보다 홍명희의 역사소설 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임꺽정은 누구인가. 왕조시대 반란의 두목은 제1호의 금기 대상이다. 때문에 그들의 '죄상'은 실록을 비롯 각종 관찬 사서에 살벌하게 나열되지만, 인물의 실상은 베일에 쌓인 채이다. 민중들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수법이었다.임꺽정에 대해서는 백정이라는 것만 알 뿐, 도우를 직업으로 했는지, 유기장을 직업으로 했는지는 불명하다. 그러나 후술하는 바와 같이 황해도의 봉산·재령 등에는 갈대밭이 많이 보여, 이 갈대밭에서 갈대를 채취하여 삿갓과 밥그릇을 짜는 것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내수사와 훈구파에 의한 사적 소유지 및 농장의 확대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행해지면서 지방 중소지주와 농민들의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일반농민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권세가의 노비로 몰락하였으며 중소지주들은 자신이 소유한 노비를 빼앗기거나 잃어버렸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노비의 도망과 탈취가 큰 타격이었다.임꺽정의 난이 일어나기 전부터 황해의 서흥·우봉·토산 등지나 강원·경기도 일대에서는 광한대당이라 불리는 도적의 무리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 도적은 대개 토지로부터 이탈된 농민과 도망한 노비들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각지로 번져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었으므로 국가에서도 진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기미년 광적 임꺽정이 해서지방에서 발호하였다. 처음에는 명화적으로 살인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대낮에 길을 막고 사람을 죽이며 관아의 옥문을 부수고 형리들을 난도질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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