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삶과 죽음
독립운동 의 불꽃-한국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순국소녀 유관순 은 1902년 12월 16일(양력)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에서 3남 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의 땅을 빌러 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부이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유관순 은 나라가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에 태어나고 자랐다. 5~6세 때 지령리에서 탑원리 마을로 이사하였다. 유관순 은 마을에 기독교가 들어오자 가족과 입교했다. 김리교회당은 어린 그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였다. 1915년 (13세)에 서울의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했다. 1918년 3월 졸업한 유관순 은 4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했다. 유관순 이 자라고 이화학교에 다닐 무렵은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온 국민이 노예생활을 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3~4월 동안 전국적으로 3·1혁명 이 일어나 일제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3월 5일 서울에서 학생단 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유관순은 이화학당 친구들과 시위에 참가하여 경무총감부에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3월 10일 각급 학교에 휴교령이 내리자, 3월 13일 유관순은 기차를 타고 고향 천안으로 내려왔다. 다음 날인 14일 오후 4시 목천보통학교 학생들이 교내에서 시위를 했다. 유관순은 각 마을을 다니며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3월 31일 천안 매봉산에 봉화가 올리고,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유관순은 선두에 서서 아버지, 삼촌, 이웃 어른 조인원과 시위대를 이끌었다. 일제 경찰의 총탄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현장에서 숨지고, 오빠 유우석은 공주에서 시위에 참여하다가 부상을 입고 구속되었다. 유관순은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경성복심법원(현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되었다.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유관순은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재판정에서'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들은 우리들을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 라고, 호통을 쳤다. 아우내 시위 주도자들이 경성복심원에 항소하면서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유관순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감방에서'독립만세'를 외치고, 수감자들에게 큰소리로 조선독립의 이유와 일제의 만행을 성토했다. 이 때문에 아우내장터 만세시위 주동자들이 모두 공주감옥으로 이감되었는데도 유관순은 혼자 서대문형무소에 남게 되었다.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수감되었다. 8호 감방에는 개성 북부교회 전도부인으로서 개성만세운동을 이끌어 낸 항일민족지도자인 어윤희와 신관빈, 그리고 일본은 망하고 대한은 당당한 독립국임을 외친 이순화, 수원의 애국기생 김향화 등 3·1혁명의 쟁쟁한 항일여성투사들과 함께 있었다. 또 7호 감방에는 그의 스승 박인덕 선생이 수감되어 있고, 그 옆 감방에는 독립운동의 화신 김마리아 선생도 수감되어 있었다.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항소심 재판을 받았다. 일본인 검사가'너희 조선인이 무슨 힘으로 독립이냐'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자, 유관순은 앉아있던 의자를 들어 검사에게 내리쳤다. 재판정은 소란해지고 이로써 7년형으로 4년이 추가 선고되었다.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 수형생활 중에도 아침 저녁으로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간수들에게 끌려가서 심한 구타를 당했다. 온갖 고문에도 굽히지 않자 간수들은 밥에 모래와 쇳가루를 섞어주는 만행을 자행했다. 계속되는 악형과 영양실조로 유관순은 1920년 10월 12일 17세를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사망한지 2일이 지난 뒤에야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미스 프라이와 미스 월터가 일인 형무소장을 만나 시신 인도를 요구했으나, 일제는 고문으로 참혹하게 된 시신을 조선인들이 보게 되면 또 다시 만세 시위가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완강히 거부했
유관순 독립운동 3·1혁명 순국 여성독립운동가 일제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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