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작가의 작품 ‘다이얼로그(dialogue)’. 8,600만 원에 시작합니다!” 경매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간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이날 경매 최고의 관심 작품. 30초 만에 작품 가격은 1억 원을 넘어섰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 ‘다이얼로그’. 8,600만 원에 시작합니다!” 경매사 의 손끝은 천천히, 끈질기게 두 고객 사이를 오간다. 휴대폰 너머의 전화 응찰자와 온라인 응찰자 사이의 숨 막히는 격돌. 관망하던 응찰자들도 자세를 고쳐 앉는다. 스물네 번의 호가를 거듭한 끝에 가격은 1억1,600만 원을 찍었다. 온라인 응찰 현황이 표시되는 전광판이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경매사 가 침착하게 추가 응찰이 없는지 거듭 확인한다.‘땅!’ 경매사 가 경매봉을 경쾌하게 내리친다. 지난달 20일 열린 케이옥션 3월 경매에서 처음으로 1억 원을 돌파하는 순간이다. 터져 나온 박수 세례가 한동안 장내를 메웠다. 흐른 시간을 확인해 보니 고작 2분 45초. K팝 한 곡 길이조차 안 되는 시간에 쓰인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드라마다.2010년부터 14년 동안 그가 성사시킨 낙찰 총액은 4,400억여 원, 경매봉을 잡은 경매는 104회에 이른다. 베테랑 의 한 끗을 찾는 여정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경매사에겐 실수가 양해되지 않아. 우린 언제나 ‘처음부터’ 잘해야 하는 사람들이야. 생각해 봐. 맨 앞의 작품이 맨 뒤의 작품보다 덜 중요하지 않잖아. 데뷔도 똑같아. 첫 무대의 첫 작품부터 잘해야 해.”너무 뻔해서 식상하게 들리는 이 방법이 지름길이었다. 수백만 원부터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다양한 단위의 숫자를 버벅대지 않고 한 번에 말할 수 있도록 시도 때도 없이 연습했다. 밤중에 자다 깨서도 완벽하게 읊을 수 있는 수준으로.숫자는 경매사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경매 시작가부터 호가, 낙찰가까지 숫자는 경매장을 압도하는 언어다. 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건 기본.“경매사는 작품 정보를 통달한 상태로 경매에 나가야 해요. 단골을 전담하며 작품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들과 여러 차례 회의도 거치죠. 사전 정보도 파악해 둬야 해요.
매달 방문하는 미용실에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완성하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경매 당일 고객들에게 발송될 각종 홍보 메시지를 점검한다. 입으로는 중얼중얼 쉬지 않고 경매 호가를 연습한다.경매팀 동료와 함께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오후에 있을 경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경매 출품작 리스트를 확인한 후, 오프닝 대본을 작성해 출력한다.오후 2시, 최종 리허설을 한다. 경매사의 호가와 전광판에 표시되는 가격이 잘 연동되는지부터 확인한다. 보통 경매사가 호가를 하면, 호가 표시를 담당하는 직원이 수동으로 가격을 입력해 스크린에 띄운다. 경매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경우, 한 작품이 최종적으로 낙찰되기까지 10초도 안 걸린다. 호가가 순식간에 오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어차피 시작점이 남들보다 한참 늦었기 때문에 그에겐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시간에 무던해지기로 했다. 맡은 바, 부끄럽지 않게 묵묵히 해내는 1인분의 일꾼. 그가 밟아온 길이다. 그는 말한다.시간 앞에 무던할 줄 아는 사람에게도 ‘버틴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다양한 조직에서 최초·최연소 여성 임원을 했던 최명화씨가 쓴 책 ‘PLAN Z’에 나오는 말을 읊었다.그의 사무실 책꽂이에는 도록이 수십 권 꽂혀있다. 경매 단상에 들고 올라가는 경매 도록이다. 책 표지마다 ‘손이천’이라는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도록을 펼치면 시작가와 호가, 작품에 대한 설명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약 한 달 단위의 업무 수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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