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씨네만세 537]
상실은 언제나 버겁다. 어떤 상실은 한 순간에 닥쳐오고, 또 다른 상실은 서서히 다가온다. 그중 무엇이 더 괴로운가를 따지는 건 무용한 일이다. 빠르든 늦든 모든 상실이 닥쳐오리란 것을 알 뿐이다.어렸을 적엔 삶이 무엇을 얻어가는 과정이라 믿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다. 삶은 모든 것을 허락한 것처럼 굴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그 모두를 앗아간다. 그리하여 삶은 비정하다. T. S. 앨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짐작한다. 만물이 태어나는 봄이란, 마침내 죽고 말 것들이 태어나는 때이므로.나의 어머니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다. 파킨슨이라 불리는 이 병은 그 자신에게, 또 그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해소될 길 없는 고통을 안긴다.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질병이란 인간을 무력하게 한다. 상실의 고통을 잘게 쪼개어서는 매일 한 움큼씩 건네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어머니를 매일 조금씩 잃어간다.
10년 넘게 앓아온 신경퇴행성 질환은 그에게서 시력을, 인지능력을, 다시 또 많은 것을 하나씩 앗아갔다. 하루 몇 번씩 들르는 것만으로는 그를 더는 돌볼 수 없어 가족들은 요양원을 알아본다.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조금쯤 무너져 내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 산드라가 아버지의 책들 가운데서, 보다 정확히는 아버지의 책들을 나눠받은 어느 제자의 서재 앞에서 읊조리는 말이다. 이 책들을 가져가주어서 다행이라고, 이 책들 가운데 아버지가 있다고, 저기 병원 병실에 있는 육신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나는 내 아버지를 이 책들 가운데서 느낀다고, 산드라는 제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 딸 앞에서 하염없이 이야기한다.
'할아버지가 쓴 것도 아니잖아요'하는 딸에게 '직접 고른 거잖아'하고 답하는 산드라의 모습이 애처로와서 나는 거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매일 조금씩 저를 잃어가는 퇴행성 질환이 그 질환을 앓는 아버지를 10년 넘게 보아온 딸을 어떻게 무너뜨려가고 있는지를 알 것 같아서였다.영화는 산드라의 일상을 비춘다. 남편이 죽고 여덟 살 난 딸을 홀로 키우는 산드라다. 통번역 일을 하고, 하루에 세 번씩 혼자 사는 아버지를 방문하고, 어린 딸을 챙기다보면 하루가 순식간이다.매일이 똑같을 것만 같던 산드라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하나는 아버지의 병세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 요양원을 구하는 일부터,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는 일이 언제고 다가올 이별을 실감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옛 친구 클레망이다. 남편의 친구였던 그는 몇 년 전 연구차 남극으로 떠나갔던 모양인데, 얼마 전 돌아와서는 파리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떠난 뒤 사랑은 제 것이 아니다 여겼던 산드라지만, 클레망과의 만남은 특별한 감상을 일으킨다.가족이 있는 클레망과 미묘한 만남을 이어가는 산드라다. 그 만남이 때로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또 때로는 그녀를 무너뜨린다.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삶으로부터 유일한 해방구가 되어주는 그와의 만남을, 산드라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큰사진보기 ▲ 영화 스틸컷 ⓒ 찬란 좌충우돌하는 둘의 감정 사이, 일어날 일들은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갈수록 쇠잔해지고 딸은 매일이 새롭게 자라난다. 딸의 성장통과 아버지의 쇠락을 번갈아 비추는 이 영화의 연출이 나는 너무나 서러워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마다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산드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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