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해진 용돈으로 아버지께 처음 사드린 양주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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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둑해진 용돈으로 아버지께 처음 사드린 양주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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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여행 나폴레온 옆집 장식장엔 ‘시바스 리갈’‘생일선물로 꼭 양주 한병을…’동네슈퍼 구석에서 집어 들어

어떤 처음은 오래 기억된다. 나에게는 술에 대한 것이 그렇다. 흔히 배갈이나 고량주라 부르는 백주를 처음 맛보았을 때의 기억. 나는 스무살이었고 여기저기 봄이 흩어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함께하던 이들과 신문지 한 장씩 바닥에 깔고 빙 둘러앉았는데 곧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짜장면과 볶음밥, 짬뽕 국물과 서비스 군만두. 그리고 마치 작은 참기름병처럼 생긴 백주 한병. 너도 한번 마셔보겠냐는 선배의 제안에 넙죽 받아 한모금 삼키고는 나는 그날 내 몸의 식도가 위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와인을 처음 마신 곳은 서울 혜화동이었다. 서먹한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 동시에 환대의 마음을 내보이고 싶었던 자리. 나는 이제껏 한번 가보지 못한 와인바를 약속 장소로 잡았다. 와인을 고를 때 목록에서 서너번째로 저렴한 것을 선택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거라는 친구의 평소 조언을 떠올리며 자신 있게 주문했다. 눈앞에서 코르크 마개가 열렸고 이어 잔에 와인이 도르르 따라질 무렵, 나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는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화이트와인의 존재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주나 맥주를 처음 마신 날에 대한 기억은 아쉽게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양주에 대한 기억만큼은 여전히 강렬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마신 기억이 아니라 선물한 기억이다. 그해 명절을 지나면서 나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용돈이 생겼다. 나는 그중 일부를 곧 돌아오는 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사는 데 쓰기로 했다. 가끔 놀러 가던 옆집 거실의 장식장을 보다가 무엇을 살지 힌트도 얻었다. 그 장식장 안에는 양주병이 몇개 있었는데 지금 되짚어보면 그중 하나가 ‘시바스 리갈’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사무라이 형상의 덮개를 뒤집어 쓰고 있는 일본의 ‘니카’ 위스키였다. 물론 우리 집에는 장식장도 없고 장식할 물건도 없었지만 그래도 양주를 한병 꼭 사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동네 슈퍼에 갔다.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양주를 한병 골랐다.

나폴레옹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공식 상품명은 ‘나폴레온’. 1976년 처음 등장해 ‘대중 양주’라 불렸고 2017년 단종되었다. 흙빛의 병, 가운데 동그랗게 그려져 있는 나폴레옹의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작품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나폴레온은 진정한 의미의 양주는 아니었다. 포도를 원료로 증류한 브랜디 원액이 20% 남짓 들어가 있고 나머지는 주정과 물, 색소 등으로 채운 것이다. 물론 나는 나폴레온의 맛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말끔히 비운 병이 꽤 오랜 시간 집에 놓여 있었을 뿐. 그러니 이 술을 마시면 흔히 경험하게 된다는 두통과 숙취도 알지 못한다.

삶의 시간이 쌓여가도 여전히 처음 겪는 일이 많다. 정말이라 믿으며 곧추세운 마음들이 어느새 허물어지거나 거짓을 드러내 보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의심과 불신을 거듭하며 바라보았던 상대가 한없이 투명해지는 순간도 있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숱한 처음들을 겪고 넘어야 할 것이다. 거칠고 가파른, 어쩐지 여기가 아닌 것 같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갈 수도 없는 길들이 사위를 둘러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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