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고 나서야 옷은 그냥 옷일 뿐이란 걸 깨달았다. 이후 ‘트랜스젠더인데 왜 치마를 입지 않느냐’는 무례한 질문에 ‘왜 내가 치마를 입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줄 알게 되었지만, ‘처음’이란 시간은 어려웠다.
공감하는 힘, 가장 높은 곳의 가치 박조건형 그림.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처음 치마를 입던 순간을, 나는 꽤 선명하게 기억한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짙은 갈색 스커트는, 고급스럽거나 멋스럽기는커녕 속치마도 없던 소위 ‘캉캉 치마’였다. 1990년대 후반이었고 그즈음 그런 스타일이 유행이긴 했지만, 허벅지살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치마는 얄팍하고 허름했다. 나는 그 치마를 사두고서 여러 날을 밖에 입고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입었다 벗었다 했다. 여성의 삶을 치마 입는 삶으로 단순 치환할 줄밖에 몰랐으니,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 성별 이분법적 주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 사람이었다. 여성으로 살아야 하니까 당연히 화장을 하고, 당연히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수술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옷은 그냥 옷일 뿐이란 걸 깨달았다.
물론 오십대 여성으로 사는 지금도 속옷을 입는다. 그러나 지금 내 속옷의 절대적 기준은 편안함이다. 후크가 있거나 와이어가 있는 속옷을 지금은 절대 입지 못한다. 그마저도 현관문에 들어서면 모두 벗어버리고 실내복 원피스 하나만 걸쳐 입는다. 그래도 이따금 발코니라도 나가야 할 때가 있어 캡이라도 달린 걸 사려다가 지금은 그냥 헐렁하고 편한 원피스 하나만 걸치고 집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햇살을 즐기는 사람이라 나는 커튼도 치지 않고 사는데, 보거나 말거나 이 집 안에서만큼은 내 멋대로 산다. 그래서 지금 내 피복을 굳이 성별로 따지자면 ‘트랜스답게’ 복합적이다. 화장은 여성, 윗옷은 남성, 카디건은 여성, 바지는 여성, 신발은 남성, 속옷은 여성. 아, 요즘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사니 화장도 선크림 하나만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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