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신의 성폭력을 고발한 인간 여성은 여전히 벌 받아 마땅한 오만한 인간으로 해석된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변신 이야기'는 오비디우스가 그리스·로마에 전해지는 신화와 전설 중 변신을 다룬 이야기를 추려 쓴 서사시 모음집이다. 이번에는 서사시 250편 중에서 '아라크네와 여신의 베짜기 경쟁'편을 소개한다. 로마의 시인이 기원후 8년에 썼기에 원작에서는 신들의 이름이 로마식으로 표기되었지만, 편의상 미네르바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아테나로 부르겠다. 다른 신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름으로 쓰겠다.
이리하여 신과 인간의 베짜기 경연이 벌어진다. 보통 '베짜기'라고 번역하지만, 사실은 그냥 누런 삼베가 아니라 여러 색실로 무늬를 짜 넣은 직물인 태피스트리를 짜는 경쟁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후경에 보이는, 벽에 걸린 장식 직물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자, 그럼 둘은 태피스트리에 각각 어떤 문양을 짜 넣었을까?아테나는 직물 중앙에 포세이돈과 아테네 시를 놓고 경쟁하여 승리한 자신의 모습을 배치했다. 네 귀퉁이에는 네 개의 겨루기 장면을 더 짜 넣었다. 최고여신 헤라와 미모를 다투다 황새로 변한 안티고네 등 감히 신과 경쟁하다 벌 받은 인간들의 최후를 묘사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 과시는 기본, 거기에 신에게 도전한 인간이 어떤 벌을 받게 되는가를 더 보여주어서 아라크네에게 경고하는 것이 아테나가 짠 직물의 주제였다.
이상 요약한 아라크네의 변신 이야기의 주제는 뭘까? 보통 신에게 대결하는 인간의 오만, 즉 '휘브리스'를 주제로 보는 경우가 많다. 오비디우스의 원작을 인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더하는 저작물의 경우에도 그렇다. 단테가 '신곡'의 연옥편에 오만함 때문에 벌 받고 있는 것이라며 아라크네를 등장시키는 것이 대표적 예다. 아라크네를 검색해 보면 나오는 현대 저자들의 글도 대부분 그렇다. '예술가의 도전 정신과 패기, 자부심'을 부각시켜 서술하는 새로운 해석의 글이 최근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라크네를 부정적으로 보는 글이 훨씬 많다.그런데 이상하다. 아라크네가 벌 받게 된 이유가 과연 신에게 도전한 오만함 때문이었을까? 만약 오만이 주제라면, 여신보다 뛰어난 자신의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 직물 문양에 아라크네 자신의 모습을 등장시켜야 했던 것 아닌가. 경쟁에서 포세이돈을 이긴 자신의 모습을 도안에 넣어 직물을 짠 아테나처럼.
그리스인의 조상은 원래 발칸반도 북쪽에 살다 기원전 2000~1200년경 현재의 그리스 지역으로 왔다. 이들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원주민의 토착신도 받아들여 제우스를 최고신으로 삼아 신화를 재편성했다. 이때 복잡한 신들의 관계를 혼인이나 부모 자식 관계로 정리하는데, 방법은 당시 가족제도인 강력한 가부장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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