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와 함께 평양 갔다온 게 원죄가 될 줄이야 대구형무소 신간회 독립운동가 유해발굴 박만순 기자
이분이는 자신의 신세를 표현한 것 같은 를 불렀다. 한국전쟁 전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남편 채병기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은 지 10년이 됐다. 이 노래를 수십 번 불러도 외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경상남북도 유족들을 중심으로 전국유족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제4대 국회에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유해 발굴, 책임자 처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1960년 경북도청 사회과는 '희생자 접수'를 받았고, 이를 이 6월 7일 신문에 1402명의 명단을 보도했다. 이렇게 경북유족회와 제4대 국회의 조사는 유족들의 기대 속에 진행되었다. 반백 년 후인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직후 대구형무소 재소자 1438명이 두 차례에 걸쳐 군 헌병대에 인계돼 불법 처형됐다고 발표했다. 1949년 8월 15일, 이일재는 서부지구당에서 함께 활동해온 채병기의 안내를 받아 백기호라는 사람의 과수원을 통해 팔공산으로 들어가 경산군 조직책으로 부임했다. 몹시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형무소 광장에는 이미 한복을 입은 약 200명의 남녀노소들이 멋대로 수염이 자란 얼굴로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고 이윽고 집행장소의 입구인 가창골 광산에 도착하여 전원을 하차시키고 열을 세우자 갑자기 여자가 통곡을 했다."한편 채병기의 아버지 채충식은 일제 하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애국자이자 혁명가였다. 그는 신간회 칠곡지회 지회장겸 총무간사를 역임하고, 이후 대구지회 서기장과 전국 중앙위원을 맡았다. 그는 1919년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해방될 때까지 민족해방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조선일보 왜관지국 경영을 시작으로 한 언론운동, 동창학원 설립 등의 교육운동, 이외에 문화, 구호운동 등 다양한 범위의 사회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남북한은 각각 분단된 정부를 수립한다. 백범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특무대장 김창룡과 고위층의 지시를 받은 안두희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채충식은 1980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빨갱이'로 낙인이 찍혀 국가와 사회로부터 배척받았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다. 아들 채병기도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전쟁통에 학살됐다."저 집 아버지, 간첩으로 내려오면 신고해라." 대구경찰서 사복 형사는 경북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 마을 주민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렸다. 채병기의 죽음을 속이고, ' 간첩으로 내려 올 수 있다'는 거짓말이었다. 경찰의 감시는 상상을 초월했다. 경찰은 손녀 채영희에게 눈깔사탕을 주며"할아버지 어디 갔냐?"고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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