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살아서는 남산 동상, 죽어서는 광화문광장 동상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에 이어, 이승만 동상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우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광화문광장 동상 건립 추진위원회'가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또한 추진위원회는"이 전 대통령의 동상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야 한다는 판단하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광화문광장에 건립하기 위해 제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들의 동상과 나란히 이승만 동상을 세우겠다는 것이다.그에 비해, 윤석열 정권하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국가보훈부의 응원하에 이승만기념관 건립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2017년에 제작된 뒤 건립 장소를 찾지 못하던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지난 7월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제막됐다. 윤 정부가 이승만·백선엽을 앞세워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으므로, 광화문광장에 이승만 동상을 건립하려는 시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힘을 받게 됐다.그런데 살아생전의 이승만은 자기 동상이 경복궁 광화문 앞이 아닌 서울 남산 위에 세워지기를 희망했다.
조선신궁·남산대신궁·노기신사도 세워졌다. 임진왜란 당시의 군대 주둔지에는 왜성대공원이 들어섰다. 을사늑약 이후의 한국통감부와 이를 뒤이은 조선총독부도 한동안 남산에 있었다. 통감 관저와 총독 관저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남산은 행정적·종교적 측면에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이 대통령 제80회 탄신 경축 중앙위원회'가 세운 이 동상은 1956년 광복절에 3부 요인들과 각국 외교사절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제막됐다. 동상 규모도 세계적이었다. 동상 사진과 함께 실린 그해 8월 17일 자 기사는"10여 개월에 걸쳐 7만여 명의 인원과 총공사비 2억 6백만 환이 소요된 것이며, 높이 81척에 건립 부지 3천여 평을 차지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승만 동상은 조선신궁이 갖고 있던 대중적 영향력을 이승만 독재에 활용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무스히토 일왕의 기운을 억누른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럴 가능성에 대비해 일본이 1945년 패망 직후에 미리 조치해둔 것이 있었다. 조선신궁의 신령을 조선 땅에서 하늘로 올려보내는 괴상한 의식이었다. 1956년 1월 7일, 이승만의 호인 우남을 서울시의 새로운 명칭으로 선호하는 의견이 가장 많다는 수도명칭조사위원회의의 발표와 함께 이 방안이 국무회의에 보고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8월 25일, 29세의 김영삼 의원이 UPI 기자회견에서"이 대통령은 우남이라는 그의 호에 따라 서울의 명칭을 우남시로 변경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한 사실이 보도됐다. 이승만 동상 건립 추진과 함께 나온 이 일은 이승만과 그 측근들이 민주공화국 이념을 얼마나 가벼이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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