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경성의 중심, 남촌의 근현대 역사를 따라 걷다 (4)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코시 옥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작가 이상의 소설 의 한 토막입니다. 식민지의 무기력한 지식인이었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날아오르려 했던 그곳, ‘미쓰코시 옥상’은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의 옥상이었습니다. 오늘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배회하던 경성의 상업중심과 백화점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백화점 건물은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환심을 사기 위해 화려한 외양을 갖춘 고층 건물로 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미츠코시 경성점도 이 공식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1930년 문을 연 미츠코시 경성점은 종업원 360여명,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대규모 업장이었습니다. 지금은 주변에 고층 빌딩들에 둘러싸여 그 존재감이 덜하게 되었지만 준공 당시만 하더라도 경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건물이었습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 중앙의 화려한 대리석 계단을 따라 옥상정원에 닿으면 경성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고 합니다. 경성에 백화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을 무렵, 이곳을 찾는 손님은 압도적으로 일본인들이 많았습니다. 백화점들이 최상류층을 겨냥한 고급화 전략을 폈던 이유도 있지만 조선인들에게 백화점이란 장소는 생소한 곳이었고, 소재지가 남촌이라는 심리적 거리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30년대 경성에 일었던 ‘모던 붐’과 함께 백화점은 조선인들에게도 더 이상 낯선 공간이 아니게 됩니다. 모던 바람과 함께 등장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 새로운 의상과 소품으로 치장한 이들은 최신 유행을 좇으며 경성의 신문화를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세련된 남촌의 백화점과 카페였습니다.
조선인이 경영하는 북촌의 백화점조선시대부터 500년간 이어온 상업 중심가 종로와 북촌 일대의 상권은 빠르게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쇠락한 종로 거리에서 조선인이 운영하는 동아부인상회와 화신상회가 그나마 성업 중에 있었습니다. 보신각을 마주보고 나란히 붙어 있던 이 두 상회는 조선인을 타겟으로 하며 남촌의 일본 상점들과 경쟁했습니다. 1934년, 화신백화점에서 큰 화재가 발생합니다. 촛불에서 시작된 불이 옮겨 붙어 서관 전체와 동관 일부가 전소됩니다. 몇 년의 노력으로 자리 잡은 백화점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됐지만 박흥식은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화재 진압의 책임을 물어 조선 총독을 압박했고, 대가로 종로경찰서 구청사를 빌려 임시 영업을 이어갑니다. 여담이지만 이 사건으로 ‘119’ 번호가 경성중앙전화국에 등록되며 이후 화재신고 번호로 자리매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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