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지방검찰청 검사라고 소개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였다. “ㄱ씨 되시죠?” 이미 피해자 이름을 알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목소리로 착각하기 쉬운 중국동포 사투리는 전혀 없는 강압적인 목소리였다.
“검찰·금감원 등, 절대 전화로 금전 요청 안 해”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한 의사가 검사와 금융감독원 직원 등을 사칭한 범죄조직에게 한 달간 속아 예금·보험·주식·가상자산·아파트담보대출 등 41억원을 마련해 전화금융사기 피해를 당한 사건이 발생해 서울경찰청이 수사 중이다. 단일 사건 기준 공식적인 역대 최대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중국동포 사투리 안 쓰는 상대방, 카톡으로 검사 공무원증 보내 23일 경찰 설명을 종합하면, 사건의 시작은 스스로 서울의 한 지방검찰청 검사라고 소개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였다. “ㄱ씨 되시죠?”라며 이미 피해자 이름을 알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목소리로 착각하기 쉬운 중국동포 사투리 등은 전혀 없는 강압적인 목소리였다. 이름과 어디서 일하는지 알고 있는 검사의 목소리에 이미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로 ㄱ씨는 시키는대로 ‘검사’를 카카오톡 친구로 추가했다.
수사관은 대출을 실행해 실제 출금해야 명의가 범행에 연루됐는지 알 수 있다며 대출을 받아 지시하는 돈을 전달하라고 했다. 전달한 자금은 모두 확인하고 범죄 연관성이 없으면 돌려주고, 수수료로 쓴 비용까지 전액 지급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는 예·적금, 보험, 주식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ㄱ씨는 대출을 실행한 뒤, 기존 예적금, 보험 등을 모두 해약해 현금으로 마련한 뒤 여러 은행 지점을 돌며 현금을 인출했다. 은행 창구 직원이 현금 사용 목적을 문의했지만, 검사가 미리 알려준 대로 직원 월급으로 지급할 거라고 잡아뗐다. 현금을 모두 인출한 뒤 검찰수사관이 지정한 장소에 갔더니, 금감원 직원이 나와 있어서 현금을 전달했다. 현금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종이봉투·에코백 등에 안 보이도록 잘 넣어서 전달했다. 물론 실제로는 현금수거책이었다. 수사기관·금융기관은 어떤 경우에도 현금을 전달받지 않는다. 범죄조직원들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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