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1] 인물따라 묘역·비석 크기 차이... 100만평짜리 거대한 '인물사전'
대전현충원은 1979년 4월 1일 착공해 6년여 만인 1985년 11월 13일 준공했습니다. 준공에 앞서 1982년 8월 27일 사병 안장을 시작으로, 준공하던 해인 1985년 2월 28일 장교 및 경찰관을 안장했습니다. 준공 이후엔 1986년 11월 7일 장관급 장교 안장, 1987년 4월 6일 애국지사 안장, 1989년 10월 23일 국가사회공헌자 안장을 시작하며 안장 대상자를 확대해 갔습니다.
대통령의 직에 있었던 사람 외에는 3.3㎡입니다. 다만, 국립묘지법에 따라 국회의장⸱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의 직에 있었던 사람이나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 중에서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묘의 면적을 따로 정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묘의 면적은 26.4㎡를 넘을 수 없습니다. 8평 규모의 묘는 비석의 높이면 91㎝이고, 좌대까지 포함하면 186㎝에 이릅니다. 받침대의 길이는 106㎝입니다. 1평 규모의 묘역에 묘비는 76㎝의 비석 아래 15㎝ 높이로, 55㎝ × 72㎝ 크기로 상석을 받칩니다. 8평 규모의 묘역의 묘비 아래 대좌대 앞면에 새기는 추모의 글은 고인의 말이나, 후손들의 글 또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 등 자유롭게 적을 수 있습니다. 비석 전면에 새기는 안장자의 신분과 성명 글씨체는 통상 유족 의견을 따라 선택됩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이들의 비석에서 이름 위에는 '애국지사' 또는 '순국선열'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들 모두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입니다.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장우 대전시장 “과(過) 많다면 홍범도 장군로 폐지”…흉상 이전 이어 도로명 폐지 논란이장우 대전시장 “폐지할 수 있다”정용래 유성구청장 “폐지 없을 것” 대전지역에서 홍범도 장군...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송영길, '홍범도장군로 폐지' 주장한 이장우 대전시장에 '꼴뚜기 같아'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전 유성구에 있는 '홍범도 장군로' 폐지 의사를 밝힌 이장우 대전시장을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더니 이 시장이 꼴뚜기였다'고 비판했다. 송 전 대표는 10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의 홍범도 장군묘역을 참배한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도 홍범도 장군의 독립투쟁과 독립운동업적을 부정하지 않는데, 대전시장이 장군의 이름을 딴 거리를 지우겠다는 정신 나간 발언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이 시장은 지난 7일 시정 브리핑을 통해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은 적합하지 않다'며 '장군의 인생 궤적을 확실히 추적해 공과를 재조명하고, 과실이 많다면 홍범도 장군로를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땅끝' 해남에 현무암이 여기저기 보이는 이유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 들르고,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에도 앞장선 이진마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인터뷰] 3년의 전세사기 극복기 ‘루나의 전세역전’ 펴낸 홍인혜“같은 일을 겪지 않는 사람에겐 정보가 되길 바라며,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위로가 ...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다시 읽는 '홍범도 일지'... 그가 걸은 가시밭길[황광우의 역사산책20] 부인 자결, 아들의 죽음, 강제 이주까지... 꺾이지 않은 독립의 꿈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우석훈의 경제수다방] 마이웨이 대통령과 홍범도 총선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다. 상원과 하원이 있는 게 아니어서, 지역구든 비례든 한꺼번에 바뀐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