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사' 쓴 일본인도 인정한 한국 산삼 산양삼 주간함양 김경민·곽영군
지난해 경남 함양군에서는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가 열렸다.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는 오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산삼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고 한국 산삼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행사로 산삼의 고장인 함양이 그 중심에서 역할을 했다.
다만 우리 함양이 내세우고 있는 이 산삼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엑스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이라도 머리가 갸우뚱 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산삼의 우수성을 매번 강조해왔지만 정작 산삼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내용은 학술회의를 통해 조금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평가가 부지기수였다. 산삼이 역사적 기록에 의해 처음 소개된 것은 기원전과 기원후가 넘나드는 삼국시대 시기다. 산삼을 나타내는 삼이라는 글자는 중국 한나라 때 사유가 지은 , 즉 한자교본에서 처음 등장했다. 우리 한국도 석삼자를 써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삼삼자로 바꾸었고 중국이나 일본은 아직도 석삼을 쓰고 있다.
정찬문 소장은"그동안 한국은 산삼 주 생산국이었고 중국은 주 소비국이었다"며"한국에서 산삼을 중국에 바친 기록은 많아도 중국에서 산삼이 넘어온 역사는 한 줄도 기록돼 있지 않다. 즉 우리 한국이 산삼 종주국이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전했다.산삼에서 산양삼으로 넘어온 시기는 고려시대부터다. 우리나라 최초 산양삼 재배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중국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쓴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찬문 소장은"우리나라에 생삼과 숙삼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오늘날의 홍삼의 전신이 됐다는 사실을 중국 송나라 사신이 증명한 것"이라며"즉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시대부터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에도 손을 댄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는 어느 책에도 이러한 가공에 대한 역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산삼은 중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당시 조선에서 명나라로 산삼이 많이 팔려나갔는데, 이때 여진족 누르하치가 그 중간길을 가로막으면서 그 상권을 움켜잡았다. 즉 먼저 조선에서 산삼을 싸게 산 후 명나라로 다시 파는 일을 반복했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으로 군비물자를 조달했다고 한다. 이는 곧 누르하치가 청나라를 세우는 역사로 이어지게 되는 데 산삼이 어느정도 잠재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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