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발전기금' 문제로 시끄러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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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규약] 마을에선 법보다 약속이 먼저

도시를 떠나 지역의 마을로 귀농, 자발적 하방을 선택하는 도시민들은 일단 용감하다. 하지만 아무리 용감한 도시민이라도, 외지인으로서, 이주민 처지로 낯선 지역의 마을에 평범한 주민으로 정착, 안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 먹고사는 생업 등 경제적 문제도 크지만, 그보다 먼저 마을 주민으로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문제, 즉 일상의 생활 환경과 생활 방식에 적응하는 게 어렵다.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마을에 가면 그 마을의 법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뜻하는 법이란 일반적인 실정법이나 성문법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을의 설촌 이래 수백 년에서 수십 년 동안 그 마을의 원주민들끼리 만들고 지켜온 일종의 약속 같은 것들이다. 법보다 더 견고하게 고착되고 마을 주민 서로를 연결하는 일종의 고유 관습, 전통 의례, 생활 문화 등이다.특히 마을공동체 사업을 열심히 벌이는 마을의 경우에는 자치규약의 형태로 성문화된 사례도 흔하다.

법적인 강제성도 없는 자치규약이 외주인인 귀농인들에게는 원주민들의 텃세로 비친다. 책정한 금액은 적정한지, 기금은 어떻게 사용되는지 규정부터 명확지 않으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반면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이주민들이 마을의 공동자산을 이용하는 등 혜택만 받는 무임승차자라고 비판할 수 있다. 자치규약의 해석과 적용기준은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의 갈등과 분쟁이 시작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마을자치규약'은 더욱 필요하다. 그것도 입장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애매할 소지가 없는 '표준화된 마을자치규약'을 마을마다 갖추어야 한다. 가령, 마을발전기금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정의부터, 해당하는 이주민의 적용 기준, 기금의 사용처와 공개 의무, 회계 처리 방법 등이 명확히 체계화, 성문화된 수준이라야 한다.최근 들어 강원도 평창군, 경남 고성군, 충북 옥천군, 충남 당진시 등 각 지자체들이 속속 표준안을 제정하고 마을에 배포하고 있다.

마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행정 등 외부 힘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의 자정 노력으로 조화롭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내부 합의를 통한 규칙 마련이 상책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설사 기존에 제정된 규약이 있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지 않게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해서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는 문제도 놓치지 않았다. 마을자치규약 표준안에는 마을회원 권리와 의무, 임원 구성 및 선출, 총회 및 마을회 등 각종 회의 절차, 회계 및 마을 공동재산 관리 규정 등 마을 단위 자치조직 운영에 필요한 투명성과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항목들이 담겨 있다.관련 조사 연구자료에 따르면 귀농인 등이 마을 이주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여유자금 부족, 생활 불편 등과 같은 경제적·환경적 요인이 단연 크다. 한편 그에 못지않게 '지역 주민과의 갈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도시민 유치를 구호로만 부르짖는 해당 지자체는 마을발전기금 등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 민원에서 '관리 권한이 없다'는 핑계로 뒷짐을 지고 있거나 빠져나갈 사안이 아닌 상황인 것이다.

우리 마을자치규약의 역사는 길고 깊다. 오늘날 지역개발사업을 하면서 용역업체들이 급조한 컨설팅의 단순한 성과물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사유농지와 공유지인 산림천택은 모두 마을공동체 등 고유의 지역 생태계에 통합돼 있었다. 향약의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을 다시 떠올리면 된다. 바로 마을자치규약이 지향하는 대로, 마을공동체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인간관계와 집단의 안정적 지속을 위한 기본 원칙이자 방향과 다름없다.특히 상부상조는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기본 실천 덕목이었다. 동물에서 인간까지, 과거에서 현재까지, 농촌이든 도시든 일상적으로 유용했다. 나아가 윤리적으로 인간성이 고양되는 실천 덕목이라는 보편성까지 발휘하고 있다.향약과 더불어 동계는 마을의 공동재산 관리, 동제, 농업협동, 공동작업, 상호부조 등을 행하는 자치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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