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40] 폭격
내가 휴전선 답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지인 한 사람이 굳이 38선이 지나는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의 영중교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학자만큼 역사에 밝은 사람이라 한국전쟁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내게 전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들려준 것은 일반화된 지식이 아니라 그의 가족이 당한, 아주 구체적이고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나마 한국전쟁 초기라서 지상의 미군조차 걷잡을 수 없이 밀리는 급박한 전황이었고, 인민군에 관한 정보도 부족해 발생한 오폭 또는 과잉 폭격이라는 해명이 따라붙기는 했다. 일부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다. 육안으로 민간인을 남북으로 구분할 수 없었고, 피란 행렬을 타고 북한군 일부가 미군 후방으로 침투하는 것을 우려할 수 있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9월 26일 맥아더에게 38선 돌파를 허용하면서도 전술목표 공격에만 집중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38선 이북으로 진격하면서, 전쟁 후에는 자신들이 파괴한 북한의 많은 시설에 대해 복구책임을 안게 된다는 것을, 전쟁 지휘부는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 폭격과 같이, 북한의 도시 전체를 통째로 불태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중국과의 국경인 압록강의 수풍댐과 그 외의 한반도 내 수력발전소, 그리고 소련과 국경으로 접하고 있는 나진시만 폭격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작전명령서는, 미국 정부가 그동안 표면적으로 견지해 오던 전술목표에 대한 정밀폭격이란 정책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기교를 부려서 서술했지만 실제로는 상부의 정밀폭격 정책을 폐기한 꼴이었다. 물론 워싱턴은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스트레이트마이어가 줄곧 주장하던 신의주 폭격은 11월 8일 감행했다. 압록강 철교 끝부분을 포함한 북한의 국경 지역과 신의주 시내를 폭격한 것이다. B-29 중폭격기 78대가 출격했다. 70대는 소이탄으로 신의주 시내를, 6대는 파괴폭탄으로 압록강 철교를 공격했다. 2대는 레이존 폭탄으로 신의주 동쪽 복선 철도교량을 폭격했다. 하루 만에 640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도시 거의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성들 대부분 전쟁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신의주 14개 중등학교 가운데 12개가 소이탄에 의해 파괴됐다. 국제협정에 따라 커다란 적십자를 표시해 두고 있던 2개의 시립병원도 전소되었다. 의사와 환자들은? 대부분은 죽지 않았을까. 소이탄이 만들어낸 화염이 오래 지속되도록 별도의 조치들도 취했다. 화재를 진화하기 위해 나온 주민들을 향해 전폭기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기총소사로 퍼부은 것이다. 소이탄 투하 직후에 시한폭탄을 투하한 것도 같은 의도였다. 이 때문에 소이탄의 화염은 며칠이든 계속되곤 했다. 화재진화나 교량복구에는 민간인이 동원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기총소사와 시한폭탄... 잔인한 전쟁폭력일까, 영특한 무력일까.
특기할 것은 폭격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대개"남은 무기를 소진했다"였다. 전폭기든 폭격기든 임무를 수행한 다음 귀대하면서 지상의 전선을 남하하기 전에 남은 싣고온 무기를 소진해 눈에 보이는 임의의 마을을 임의로 폭격한 것이다. 기체의 중량을 감소시켜 기지까지 돌아가는 휘발유를 절약한 것일까, 아니면 충실하게 폭격을 연습한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긴장감은 넘치지만 자신은 절대로 죽거나 다칠 일이 없는, 컴퓨터 게임과 다를 바 없는 신나는 폭격놀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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