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한두 번은 ‘깃발 여행’을 간다. 잘 모르는 곳을 가이드와 함께 가는 여행이다. 가이드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깃발을 들고 다닌다. 별 생각 없이 깃발을 따라 가다보면 여행 목적지에 다다른다. 길을 제대로 찾아갈 자신이 없거나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을 때 깃발 여행을 가면 그래도 실수 없이 여러 곳을 관광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만약 깃발을
든 가이드가 잘못된 지도를 보고 여행객들을 인도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이드는 물론 여행객들까지 갈팡질팡하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11월 이후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도 깃발을 잃은 여행객처럼 혼선에 빠질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미국 금리인하 깃발에 세계각국 동참우리나라 한국은행도 10월11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한은의 통화정책은 지난 2021년8월 이후 계속 동결해왔던 기준금리가 38개월 만에 인하로 바뀌었다. 기준 금리를 내린 것은 2020년5월 이후 4년5개월만이다.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값 상승이라는 부작용도 예상되지만 금리를 내려 내수회복을 견인해야 한다는 명분이 더 앞선 결과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은의 금리인하 배경에는 미국이 지난 9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한 영향이 컸다. 미국의 금리인하로 한미금리차가 2%포인트에서 1.5%포인트로 축소되면서 환율이 안정된 것이 우리나라 통화 정책의 공간을 넓혀줬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향후 3개월간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며 “이런 점에서 이번 금리인하는 ‘매파적’이라고 평가했다. 한 마디로 기준금리 인하라는 방향은 미국을 따라서 가겠지만 진폭은 나름대로 고민해 보겠다는 얘기다.
이 같은 통화가치 변화의 이면에는 시장금리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금리 인하 후 미국국채 10년물 금리는 연3.687%에서 연4.073%로 0.39%포인트 올랐다. 기준금리는 내렸지만 시장금리는 반대로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한국국채 금리는 이 기간 0.11%포인트 인상됐고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0.12% 상승했다. 미국은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시장금리 인상폭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강세국면이 진행됐다. 한동안 2%대를 향해 하락 추세를 보이던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다시 오름세로 반전했다. 10월10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대비 2.4%를 기록해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계절성과 단기 변동성이 높은 농산물과 에너지를 제외한 코어 인플레이션율은 9월에 3.4%를 기록해 전달보다도 높아졌다. 9월 물가지표는 인플레이션도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신호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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