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수한 전 국회의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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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수한 전 국회의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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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의 나이로 별세한 故 김수한 전 국회의장. 민주화 운동과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 장례식은 다음달 3일 대전 현충원에서 거행.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 장에 故 김수한 국회의장 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뉴스1 김수한 국회의장 이 30일 오전 8시 4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대구 출신인 고인은 7대 총선에서 신한민주당 전국구(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됐다. 8대 총선 때 서울 영등포을, 9·10·12대 총선 때 서울 관악, 15대 국회 때 전국구로 당선돼 6선을 했다. 15대 국회 전반기인 1996~1998년 국회의장 을 지냈다.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인연을 맺은 뒤 민주화 운동 을 함께했으며, 이후 YS의 동지로 활동했다. 고인의 삶 자체가 한국 현대사이자 정치사 였다. 1943년 경북중학교 3학년 시절 친일 광산부호가 일제에 헌납한 비행기 날개 위 일장기가 훼손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평소 ‘반항아’로 불리던 고인이 용의자로 몰렸다. 거친 취조를 견뎠으나 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김 전 의장은 학도병 1기로 자원 입대했다. 부대원 중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었다. 전 전 대통령과는 1979년 12·12사태 후 다시 만나게 된다. 당시 신민당 소속 국회 개헌특위 위원이었던 고인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군인이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고, 이듬해 ‘국가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계엄사령부에 강제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정치 활동은 1957년 민주혁신당 창당작업에 참여하면서 시작했다. 대구지역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서상일을 따랐다. 박정희 정부 시절엔 대일(對日)굴욕외교반대투쟁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고인은 1990년 3당 합당 전까지 32년을 줄곧 야당에서 지냈다. ‘달변의 지략가’이자 ‘명(名)대변인’으로 정평이 자자했다. 유신 시절 “야당은 김수한의 입으로 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편법으로 법안을 밀어붙일 때를 일컫는 ‘날치기’라는 단어도 고인이 처음 썼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 때 모습. 중앙포토 YS와는 유독 각별했다. 3당 합당 당시 “호랑이를 잡으려 호랑이굴로 들어갔다”는 YS의 결심을 강하게 지지했다. YS는 1990년 소련방문 때 당의 반대에도 고집스럽게 원외 인사였던 고인을 데려갔다. 고인은 국회를 떠난 뒤에는 한·일친선협회중앙회장을 맡아 민간외교 분야에서 활동했다.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고인은 한일관계에 대해 ‘나무만 볼 것이 아니라 숲을 봐야 할 때’다. 미래지향적 발전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뜻을 기렸다. 고인은 2012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정권 재창출에도 기여했다. 6일간 경선준비위원장을 지내곤 이어 선거관리위원장이 돼 경선을 총괄했다. 당시 당 대표였던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는 “민주화와 여야 협치를 위해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며 “‘큰 별’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장남 김성동 씨, 김숙향 전 개혁신당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 등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다음달 3일, 장지는 대전 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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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 국회의장 별세 민주화 운동 정치사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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