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차 구역 이용 시 차량 등록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람 중심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사입니다. 장애인이 타인의 차량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이동권 제한과 그로 인한 불편함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나는 특수학급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세상의 편견을 깨기 위해 강단에 서는 장애인식개선 강사다. 전국 각지의 공공기관과 학교를 다니며"우리의 시스템은 장애인의 실정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청중은 대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할 수 있는 기준이 '차'일까요, '사람'일까요?
"라고 물으면 장내는 이내 조용해진다. 비장애인 대다수는 물론, 행정을 집행하는 이들조차 이 당연해 보이는 질문 속에 숨은 모순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인 필자는 생활속에서 이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내 명의로 등록된 차량이 아닌 지인의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할 때다.
나는 여전히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고 내 몸은 그대로인데, 내가 탄 '차'에 노란색 주차 표지가 붙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장애인 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없다. 텅 빈 장애인 전용 칸을 앞에 두고도, 휠체어를 내릴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는 일반 주차 칸을 찾아 멀리 헤매야 하는 역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마주한 서글픈 자화상이다.
"장애인이 탔어도 이 차는 안 됩니다"라는 거절 AD 얼마 전, 지인의 차를 타고 인근 대형 마트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주말이라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다행히 입구와 가까운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몇 곳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차를 세울 수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지인이 미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혜현씨, 여기 세워도 되는 거죠? 당사자가 타고 있으니까.
" 내 대답은"아니오"였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내가 직접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에는 노란색 주차 표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인은 마트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 주차장까지 가서야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일반 주차 칸은 폭이 좁아 휠체어를 내릴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다.
지인은 내가 내릴 수 있도록 차를 통로 쪽으로 비스듬히 뺀 뒤에야 겨우 문을 열어주었다. 지나가는 차량의 경적 소리와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휠체어로 옮겨 타는 그 짧은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트 입구까지 한참을 굴러가며 생각했다. 나는 분명 국가가 인증한 보행 장애인인데, 내가 탄 '차'가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이동권은 박탈당했다.
만약 내가 내 차를 직접 운전해 왔다면 누렸을 당연한 편의가, 타인의 호의를 빌려 탄 순간 '부정 주차'라는 범법 행위의 문턱 앞에 멈춰 선 것이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장애인의 일상을 돕기 위한 법이, 오히려 장애인이 타인의 차를 이용해 사회적 관계를 맺는 행위 자체를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량'에 묶인 권리가 만드는 이동권의 사각지대 우리나라의 주차 표지 발급 기준은 철저히 행정 편의적인 '차량' 중심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등록된 특정 차량 한 대 안에 갇혀버린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은 단순히 '주차를 못 한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첫째, 공유 경제 시대와의 괴리다.
카셰어링이나 렌터카 이용이 보편화된 시대에도 장애인은 자신의 차가 아니면 주차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여행지에 가서 차를 빌리는 순간, 장애인의 이동 편의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둘째, 사회적 관계의 위축이다. 지인의 차를 탈 때마다 주차 문제로 폐를 끼치게 될까 봐 약속을 주저하게 된다.
셋째, 긴급 상황의 무방비다. 사고로 대차를 받았을 때, 보행 장애가 있는 당사자는 집 앞 주차장조차 이용하기 힘든 처지에 놓인다. 실제 법의 시선은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이 타는 특정 쇠붙이'에 고정되어 있다. 국민권익위도 인정한 '사람 중심'으로의 전환 필요성 다행히 최근 의미 있는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2025년, 국민권익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장애인 주차 표지 발급 방식을 기존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차량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보행 장애가 있는 당사자라면 어떤 차량을 이용하더라도 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있도록 휴대용 표지를 도입하라는 취지다. 이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당사자가 소지하고 탑승 차량에 비치하는 '개인별 퍼밋' 제도가 보편적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장애인이 타는 차'가 아니라 '장애인 본인'의 권리에 집중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디지털 복지카드나 스마트폰 인증 시스템을 활용하면 부정 사용을 방지하면서도 얼마든지 유연한 운영이 가능하다.
'부정 사용의 가능성'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행정의 직무유기다. '마음의 경사로'를 까는 법령의 재설계 나는 평소 우리 사회에 '마음의 경사로'를 놓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휠체어가 오갈 수 있는 물리적인 경사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제도의 온기다. 현재의 낡은 법령은 비장애인들로 하여금"표지 없는 차는 무조건 신고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하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법이 사람을 따라와야지, 사람이 법의 낡은 틀에 자신을 구겨 넣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 주차 구역은 단순히 차를 세우는 공간이 아니다. 보행이 불편한 누군가에게는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이자, 비장애인 중심의 설계에서 유일하게 보장받는 '최소한의 접근권'이다. 권리의 주인은 '사람'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권익위의 권고를 적극 수용하여 법령을 재정비해야 한다.
장애인의 이동권이 차량 번호판에 묶여 있는 이 기이한 풍경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장애인 주차 표지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장애인 편의증진이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품격이다. 나아가 이는 장애인만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언젠가 노인이 되거나 일시적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보편적 권리'의 시작이 될 것이다.
강단에서 내가 던진 질문에 우리 사회가"당연히 사람 중심"이라고 당당히 답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사람'이 아닌 '차량'에 묶여 있는 현행 장애인 주차 표지 제도의 실상을 알리고, 2025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개선 권고에 힘을 보태어 보다 당사자 중심적인 이동권 정책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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