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 친구를 통해 본 정체성과 애국심의 복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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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친구를 통해 본 정체성과 애국심의 복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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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에서 쿠르드족으로 살아가는 친구와의 경험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 애국심, 그리고 역사적 상처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성찰하는 글. 유니클로 논쟁과 X세대의 반일 감정을 연결하여 문화적 자기 부정과 죄책감의 근원을 탐구한다.

쿠르드 반군 쿠르드노동자당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이 지난해 2월 수감 중 낸 성명을 친 쿠르드족 인민평등민주당 대표단이 낭독하자, 튀르키예 디야르바크르에서 사람들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친일파냐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에서 친일파 소리 듣기는 참 쉽다. 유니클로 불매에 참여하지 않아도 친일파다. 한국에도 많은 스파 브랜드가 있다.

유니클로를 따라갈 수 있는 스파 브랜드는 없다. 물론 국내 스파 브랜드도 요즘은 잘 만든다고 한다. 몇번 사봤더니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토록 다양한 종류의 기본 아이템을 그 질에 그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에 가깝다.

유니클로의 생산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덕에 그 가격이 가능한 것이다. 나 같은 엑스세대가 반일 운동의 중심이라는 건 잘 안다. 중심을 벗어나 거의 핵심이다. 내 보기에 그건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에 대한 문화적 자기 부정으로부터 생기는 현상이다.

내 세대만큼 일본 문화에 환장한 세대는 없다. 유년기에 본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일본 것이었다. 일본 것인지도 모르고 봤다. 우리는 ‘드래곤볼’도 한국 만화인 줄 알고 불법 번역본으로 본 세대다.

그 시절 봤던 많은 드라마와 예능도 일본 콘텐츠를 베낀 것이었다. 엑스세대가 반일 운동의 중심이 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과거에 모르고 지나치게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나이 들어서 강한 반발로 터져 나오는 것 아닐까. 친구가 말했다.

“넌 일제 강점기 분명 동경제국대학 유학 갔다 와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고~히를 마시며 이놈의 촌구석 얼른 동경처럼 발전했으면 좋겠다 불평하는 쓸모없는 모던보이였을 게 틀림없다. ” 틀림없다. 내가 운 좋게 자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나는 청년기를 독립운동에 희생한 그 시절 젊은이들을 깊이 존경한다.

내가 그렇게 살았을 것 같지는 않다. 청년기의 나는 겁이 많고 나약하고 외세 문물에 매우 약한 타입이었다. 그래서 외국에 몇년씩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이놈의 촌구석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불평하는 젊은이로 성장한 것이다. 외국에 좀 살아본 건 좀 다행이었다.

많은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1990년대 캐나다로 어학연수 가서 만난 친구들은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가장 많은 국적이 튀르키예라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그 여름 그 학원에는 튀르키예 친구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같은 반 멕시코 친구와 결혼을 했다. 20년 전에는 한동안 페이스북에 둘의 알콩달콩한 사진이 올라왔다.

어느 날 멈췄다. 무슬림 친구와 가톨릭이 종교인 친구는 계속 행복한 결혼을 이어 나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튀르키예 친구 중에서도 학원을 정말이지 열심히 다니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같은 튀르키예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금 겉도는 느낌이었다.

내향적인 친구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쿠르드족 튀르키예인이었다. 그걸 알게 된 건 순전히 나의 지역적 관심 덕분이었다.

나는 누굴 만나든 ‘어느 지역에서 왔냐’고 물었다. 서울 사람 부산 사람 다르듯이, 모든 국가 사람들은 지역별로 다르다. 북부와 남부 이탈리아인은 다른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남미 친구들은 피부색에 따라 문화가 달라지기도 했다.

원주민 피가 얼마나 흐르느냐, 백인 피가 얼마나 흐르느냐에 따라 각각의 사회적 계층도 달랐다. 쿠르드족 친구는 튀르키예에 대해 궁금한 점을 캐묻는 나에게 쿠르드족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입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쿠르드족이지만 튀르키예인이야. 내 나라는 튀르키예야. 나는 튀르키예에서 튀르키예인으로 인정받으면서 성공하고 싶어. ”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가슴이 지나치게 뜨거운 대학생이었고, 그런 말은 마치 일제 강점기 조선 청년이 동경제국대학 유학을 갔다가 튀르키예인 유학생을 만나 “나는 조센징이지만 조센징이 아니라 일본인이야. 내 나라는 일본이야”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튀르키예에는 1300만~1700만명 정도 쿠르드인이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의 20% 정도다. 20세기 후반까지는 쿠르드어 사용 자체가 불법이었다.

종종 테러를 벌이는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 때문에 쿠르드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친구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동남부 가난한 지역에 몰려 산다. 최대 도시 이스탄불 출신에 외국 연수까지 왔다는 건 가족이 튀르키예 사회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닦았다는 증거다.

그의 말이 모든 쿠르드 튀르키예인 청년의 의견을 대변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 친구의 말을 점점 더 이해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또 쿠르드족 이름이 튀어나왔다. 미국은 그들을 이용해 이란 정권을 전복하려 했다.

쿠르드족은 환영했다. 그들은 4천만 인구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없는 민족이다. 튀르키예, 이란, 이라크, 시리아 국경이 만나는 산악지대에 산다. 쿠르디스탄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그들은 국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강대국 손을 잡으려 한다. 20세기 초 영국은 그들에게 오스만 제국과 맞서 싸우면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72년 미국, 이란 편을 들며 이라크군과 싸웠지만 또 독립은 무산됐다. 2003년 이라크전 때도 미국을 도왔으나 주변국 반발로 독립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뻔했다.

쿠르드족 지상군 투입이 무산됐으니 다행이다. 아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은 국가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급하게 세운 민족국가 하나는 중동의 정치적 불구덩이가 됐다.

쿠르드족 국가를 외세와 계약으로 세우는 순간, 그 국가 역시 영원한 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쿠르드족은 계속해서 무장 독립투쟁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 튀르키예에서 태어나 평생을 튀르키예인으로 살았던 내 쿠르드족 친구는 어떻게든 튀르키예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매일 자신만의 투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튀르키예인으로 인정받고 조용히 편안하게 가정을 꾸리며 성공한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친구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역사의 바퀴에 짓눌리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인 사람들의 존재를 종종 생각한다. 옳은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순간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선다.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고히를 마시던 모던보이도 모두 친일파는 아니었다. 이런 소리 하는 순간 친일파 소리 또 듣겠지만, 같은 쿠르드족 사람들로부터 평생 그 친구가 들었을 비난만큼 크지 않다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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