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노동⑤]“AI는 해고 통지서로 오지 않는다”···‘질 낮은 일자리’로 재편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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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노동⑤]“AI는 해고 통지서로 오지 않는다”···‘질 낮은 일자리’로 재편될 뿐
노동⑤]“AI는 해고 통지서로 오지 않는다”···‘질 낮은 일자리’로 재편될 뿐

인공지능(AI)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물음표에 가깝다. AI가 채용 규모를 감소시켰는지, AI로 기존 일자리가 줄었는지, AI가 ...

왼쪽부터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수석 경제학자,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마크 그레이엄 옥스퍼드대 교수. 인공지능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물음표에 가깝다.

AI가 채용 규모를 감소시켰는지, AI로 기존 일자리가 줄었는지, AI가 인간을 정말 대체하고 있는지를 둘러싼 논의는 많지만 뚜렷한 인과관계는 드러나지 않았다. 반면 AI를 둘러싼 노동시장의 공포는 실재한다. AI의 영향을 과대평가해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AI 개발기업이 노동자에게 심는 공포, AI가 업무 현장에 파고들 때마다 증가하는 두려움이 일터에 혼재돼 있다. 경향신문은 5일 책 의 저자 마크 그레이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수석 경제학자에게 AI와 노동시장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오랜 시간 지켜본 이들은 “AI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접근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라고 짚었다. 논의의 초점이 AI 도입과 일자리 증감에만 맞춰지면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게 되고, AI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입맛에 맞게 AI-노동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일자리의 소멸이 아니라 일자리의 재편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레이엄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는가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라고 했다.

오 실장도 AI가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노동을 재편한다고 했다. 그는 “공포도 과장이지만 안심도 착각”이라며 “AI가 이끄는 고용 영향은 대규모 실업보다는 점진적 고용 대체와 업무 재배치, 직무 변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AI 도입 이후 노동시장의 ‘약한 고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자리 질의 변화를 우려했다. 이 수석은 “중소기업 노동자는 이동한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통계적으로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얼마나 일자리의 질이 악화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더 문제”라고 했다.

노동시장의 약자부터 AI의 영향을 받게 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레이엄 교수는 AI가 일자리 조정에 미치는 영향을 시장에만 놔두면 안 된다며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자동으로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핵심은 “기업이 AI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정부의 정책과 규제로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신규 채용 줄면 숙련은?

세 사람이 말하는 일자리 변화의 핵심은 해고가 아니다. 이들은 당장 체감되는 충격을 일자리 소멸이 아니라 신규 진입의 축소로 봤다. 기존 일자리가 한꺼번에 없어지기보다는, 업무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력 유입이 줄어드는 방식이다. 반복 업무는 AI로 넘어가고, 남은 일은 더 복합적이고 숙련이 필요한 형태로 바뀌면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기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수석은 “엔트리 레벨 일자리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경험을 쌓고 암묵지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며 “이 단계가 축소되면 향후 숙련과 전문성 형성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엔트리 레벨 채용 축소는 굉장히 심각하게 벌어지는 현상이며, 기업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레이엄 교수도 “초급 직무는 반복적인 업무가 많아 자동화되기 쉽고, 이런 역할이 사라지면 노동시장 진입 경로 자체가 줄어든다”고 했다.

오 실장 역시 “상당 부문에서 AI의 영향은 기존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신규 발주 중단이나 신규 채용 감소 형태로 나타난다”며 “즉 기존 일자리가 아니라 미래 일자리를 공격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 수석은 이같은 현상을 ‘죄수의 딜레마’로 칭했다. 기업으로서는 당장의 비용 절감을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 숙련 인력 공급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단순 업무를 통해 숙련이 단계적으로 형성됐지만 지금은 그 과정이 압축되거나 생략되고 있다”며 “향후 5년 동안 이 흐름이 이어지면 수요는 유지되는데 공급이 부족해지는 구조적 공백이 생기고, 노동시장 재생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 실장은 신규 채용 감소를 AI 영향으로 단순화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AI는 절대 단독으로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비즈니스 모델 변화, 자동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동한다”며 “AI 도입이 없었다면 기업들이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을지 되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이 아니라 기업의 고용 전략이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졌을 가능성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일자리 감소가 아니라 ‘직무 재편’ 세 사람은 ‘직무 재편’을 AI 시대 노동 변화의 핵심으로 꼽았다. 이들은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업무 단위에서 자동화가 이뤄지고, 남은 업무를 중심으로 직무가 재구성된다고 봤다. 이 수석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공포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일자리 재편과 관련된 변화”라며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재편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멸과 재편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 논의하면 정책 대응도 방향을 잡기 어렵고, 논의가 일자리 문제 그 자체보단 노동시장에 밀려난 이들을 염두에 둔 복지나 기본소득 문제로만 흘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는가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며 “직업 전체가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고 개별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직무가 재편된다”고 했다. 이어 “콜센터는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더 강하게 모니터링되고 더 강도 높은 형태로 변화했다”며 “AI 도입 이후 노동자는 임금, 고용 안정성, 자율성, 그리고 노동 조건에서 모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오 실장은 “AI는 해고 통지서보다 업무 분장 변경표를 들고 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신기술이 언제나 일자리를 위협해 왔지만, 실제보다 공포가 과장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인터넷과 전자상거래가 확산하던 시기에도 여행사, 유통·출판 등 직무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지만, 결과는 직무의 소멸보다 재편에 가까웠다. 오 실장은 AI 시대에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날 것으로 봤다.

그는 “대부분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자연 감소분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변화가 나타났다”며 “AI 역시 인간 노동을 전면적으로 대체하기보다 공존하는 ‘헤테로메이션’ 단계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약한 고리, 노동 조건이 나빠질 수도 전문가들은 일자리 재편의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일자리가 유지되더라도 어떤 형태로 재편되느냐에 따라 노동의 질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AI의 충격은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도 더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수석은 “현재 AI 담론이 로펌·개발자 등 상위직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며 “실제 대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은 여성, 비정규직, 사무보조 등 저임금 직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집단은 일자리를 잃어도 다른 일자리로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통계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동한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레이엄 교수도 “생산성 향상이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며 “AI는 노동자를 더 쉽게 감시하고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라고 했다. 오 실장은 “무노조 사업장이나 외주화된 일자리, 플랫폼 노동이 AI 도입의 실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업으로서는 저항이 적은 영역부터 자동화를 적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에선 이미 AI 도입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배달 플랫폼은 과거 현장에서 배차를 조정하고 노동자를 관리하던 ‘중간관리자’ 역할을 AI 기반 알고리즘으로 대체했다. 배달 플랫폼의 경우 일자리 ‘양’은 오히려 늘었다. 수십만명의 배달 라이더가 새로 유입되면서 고용 규모 자체는 확대됐다.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은 효율성만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오 실장은 “알고리즘은 융통성이 없다”며 “비 오는 날 몇 시간 연속으로 일하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판단 없이 매분 매초 일감을 제시한다”고 했다.

‘정책 설계’에 달렸다 상황이 복잡한데도 정부 정책 방향은 AI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통상부는 최근 숙련된 제조업 ‘명장’의 기술을 AI에 학습시키는 기업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HD현대중공업에선 이미 조선소 명장의 기술을 AI가 익히는 중이다. 오 실장은 “자본의 공포 마케팅에 정부가 세금을 들여 지원하는 꼴”이라고 했다.

그는 “실패가 예정된 사업”이라며 “명장의 기술은 각각 책 한 권을 써야 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것들인데, 이를 표준화하겠다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 노동의 원칙을 몇 가지 제시했다. 그레이엄 교수는 “정부는 단순히 AI 도입을 장려하는 것을 넘어, AI가 활용되는 방식을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 보호 기준 설정, 작업장 내 활용 규제, 이익의 공정한 분배 보장, 그리고 노동자의 전환 지원을 포함한 정책적 고민을 정부가 해야 한다”고 했다.

오 실장 또한 정부가 해야 할 과제를 세 가지로 제안했다. 신기술 도입의 조건과 규칙을 노사 간 협상을 통해 정립하고 AI 도입에 따른 고용 영향과 작업장 위험성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와 알고리즘을 검증할 수 있는 공공 역량을 구축하는 일 또한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선 노사가 AI 도입을 두고 협상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직접 협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이 수석은 “AI 활용은 사회적 선택의 문제”라며 “정책적으로 노동 대체가 아닌 노동 보완형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AI를 실질적으로 활용을 많이 하면서 정책적, 기술적으로 고민할 토대가 갖춰진 나라”라며 “그런 면에서 조금 더 정부의 역할을 보여줄 여지가 있고, AI와 노동과 관련된 정책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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