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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의 나주성 방문과 동학농민군의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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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의 나주성 방문과 동학농민군의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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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7월 전주에서 철병한 농민군은 남원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며 폐정개혁을 추진했다. 김학진과 전봉준은 협력해 전라도 행정권을 장악했고, 나주성 공방전이 장기화되면서 전봉준이 직접 나주성을 방문해 민종렬과 면담했으나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전봉준의 대담함이 드러났으며, 나주성 장령들은 그를 제거하려 했으나 그의 기품에 압도되어 실패했다.

전주에서 철병한 농민군은 7월 15일 남원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전라도 53개가 고을에 집강소가 설치된 뒤에 이들의 사기진작과 폐정개혁의 추진, 그리고 적폐의 시정을 위한 집회였다. 수만 명이 모였다.

봉기 이래 남원 집회처럼 많은 농민군이 참가한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 대회의 소식을 들은 김학진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 김학진은 경복궁쿠데타와 친일 개화정권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남원에 군관 송인회를 보내"같이 국난을 짊어지기로 약속하고 도인을 거느리고 함께 전주를 지키자"는 내용의 글과 함께 전봉준 등 농민군 지도자를 만나자고 제의해 왔다.

전봉준은 김개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함께 가기를 청했으나 김개남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하여 전봉준은 최경선 등 40여 명과 함께 전주로 가서 김학진을 만났다. AD 김학진과 담판 끝에 수성의 임무를 맡기로 하고 전라도 감사로부터 전라도의 행정권을 이양 받게 되었다. 이 때 김학진의 이름으로 전라도 53주에 공문을 보내어, 농민군은 무기를 반납하고 수령은 동학도의 금압을 일체 중지하되 잘못된 일이 있으면 집강에 알려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이로써 전봉준은 선화당에 자리 잡고 일도를 호령하였으며 모든 권한은 그의 손에서 나왔다. 전라도 대부분의 군현에 집강소가 설치되었지만, 나주·남원·운봉이 마지막까지 동학농민군에게 항거하며 집강소 설치를 거부하고 있었다. 지도부는 회의를 거쳐 이를 징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최경선은 나주, 김개남은 남원, 김봉득은 운봉을 각각 징벌하도록 하고 군사를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나주목사 민종렬이 읍내 백성들을 동원하여 성을 굳게 지키고 응전하지 않으므로써 나주에서는 쉬게 접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주성은 서북쪽은 큰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남쪽으로 큰 강이 성을 끼고 돌아가는 요새지였다. 피아간에 대치한 채 여러 날이 지나도록 동학농민군은 성을 함락할 수 없었다. 몇 차례 국지전이 벌어졌지만 동학농민군의 적지 않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전라도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남원과 운봉도 마침내 농민군의 수중으로 떨어져 평온을 되찾았는데 유독 나주성만이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나주성의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전봉준은 관찰사 김학진을 만나 나주성의 귀순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리고 8월 중순에 직접 나주성을 방문하였다. 다음은 전봉준의 나주성 방문에 관한 기록이다. 8월 13일 전봉준은 부하 십수 인을 거느리고 무장을 하지 않은 채 서문 밖에 와서,"나는 전라감영의 문첩을 가지고 영리와 비밀히 왔으니 성문을 열어 민태수와 만나게 하라.

" 목사 민종열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그는 감사 김학진의 공문과 영리의 안내를 받아 몇 명 수종자를 데리고 나주성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봉준은 민종렬과의 상담을 실패하고 성내에서 이날 밤을 지내고 돌아왔다. 전봉준이 성내에서 하루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이었다.

수성 장령들이 모여 전봉준이 성밖으로 나가면 뒤에서 총을 쏘아 이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봉준은 출발에 앞서 수성 장령을 불러놓고, 난데없이 그들이 입고 온 복장 10여 벌을 벗어 내놓으며,"이는 내 수종들이 입고 온 복장이다. 두어 달 동안의 더위와 장마에 돌아다닌 결과 땀과 때가 이렇게 더러워졌으니 그대들이 싹 빨래를 시켜서, 내가 이길로 영암에 내려갔다가 3, 4일 후 반드시 올 것이니 그때 옷을 바꿔 입게끔 수고를 사양치 않고 해주면 고맙겠다.

" 전봉준의 말을 들은 수성 장령들은 그 때에 가서도 늦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전봉준을 무사히 보내주었다. ') 전봉준이 나주성을 점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달리 효과는 많았다. 나주목사나 장령들은 전봉준의 대담성과 기품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목사는 전 대장의 기품을 보고 또 그 언사를 듣자 간담이 서늘하고 말문이 막혀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오직 고개를 숙이고 전후사유를 듣기를 청할 뿐이었다.

"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였다. 전봉준은 상대의 적진을 향해 무장을 하지 않은 채 유유히 방문하고, 그 곳에서 하루밤을 묵고 나왔다. 이런 정도의 배포와 담력은 보통사람은 감히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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