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신뢰했던 여느 시민들처럼 잠들기 어려운 며칠을 보냈다. 진자에 매달린 추처럼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마음이 생각을 방해했다...그러나 한겨레 기자로서 가꿔온 제1원칙은 그 모든 걸 넘어선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 어길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엄지원 ㅣ 사건팀장 기자로 살면 무대 위의 모습과 무대 밖의 모습이 다른 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무대 위에선 호방한 재담꾼인데 무대 밖에선 극도로 낯을 가리고 무뚝뚝하다거나, 공식석상에선 약자의 수호자인데 실제로 만나보면 ‘갑질’이 몸에 배어 있다거나…. 겉과 속, 무대 안팎의 모습이 시종 비슷해서 놀라운 이들도 있긴 했다. 10일 숨진 채 발견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카메라가 비추거나 안 비추거나 그는 우리가 아는 ‘박원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 뒤 알려진 ‘성추행 피소’ 사실이 충격과 혼란을 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된 거물급 정치인이나 전설적인 문화계 인사들은 여성 인권에 크게 기여하거나 목소리를 높여온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미투 고백에 놀라긴 했어도 그다지 혼란스럽진 않았다.
취임 뒤 가장 먼저 쪽방촌을 찾고, 선거 때 만났던 미화원들과의 약속을 지켜 일일 미화원 노동에 나섰던 시장, 트라우마로 숨진 지하철 기관사와 거리에서 숨진 노숙인의 빈소를 누구보다 먼저 찾았던 시장. 내가 신뢰한 것은 그런 박원순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의 가치와 삶을 지지했던 이가 서야 하는 자리는 힘없는 자, 피해 호소자의 곁이 아닐까. 박 시장의 공과가 모두 평가돼야 하는 것은 맞다. 역사는 운동가와 정치인으로서 그의 공을 공정히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죽음의 죄까지 떠안도록 요구받고 고통스러워할 피해 호소자가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있다. 그가 받은 충격은 분명 우리의 충격을 넘어설 것이다. 공과에 대한 평가 작업과 추모는 언제든 이어갈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이의 회복을 위한 지원은 신속해야 한다. 일각에선 피해 호소자에 대한 ‘신상털기’에 나서고 ‘정치적 음모’를 주장하고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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