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깜빡 봄이 온 줄 속을 뻔한 날이었다. 📝 김다은 기자
장례식장에 전운이 감돌았다. 3월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가 이루어지던 그때, 나는 조모상으로 고향인 대구에 있었다. K드라마를 찍는다면 빈소만 한 곳이 없으리라. 나는 진정한 ‘한국 문화’는 장례식장의 천태만상에 집약돼 있다고 굳게 믿는 편이다. 화장장 예약이 꽉 차 5일장으로 치러진 ‘한국식’ 장례의 클라이맥스는 대선 개표였다. 출구조사 발표 20분 전부터 1번 지지자들은 상주 휴게실에, 2번 지지자들은 접객실에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내 오후 7시30분. 초접전 격차. 두 진영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정의가 무너졌다.” 두 후보 간의 득표 격차가 좁게 유지되자, 2번 지지자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그는 갑자기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거침없이 마셨다. 그의 형은 “격차가 얼마든 이기면 그만이다. 어쨌건 이기고 있지 않느냐”라며 달랬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1번 지지자들은 조용히 눈빛을 교환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애타는 긴장감.
‘확정’이라는 단어가 일으킨 희비극의 교차. 누군가는 밤새 뒤척였고 누군가는 악몽을 꿨다. 누군가는 비로소 안도하며 코를 골았다. 이런 장례식은 또 처음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저 결과를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 개표가 끝나갈 때쯤, 아버지는 둘러앉은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태어난 아버지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모두 겪었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권력을 잡았던 시대도 수차례 살아온 이의 ‘옳으신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만을 향했다. 안심한 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불안한 이들은 구겨진 종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다시 무언가를 애도하고 있는 듯했다. 검은 상복을 추슬렀다.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 위로인지 위장인지 헷갈리는 말을 웅얼거려보았다. 민주주의의 꽃이 피었는가? 그날 밤은 깜빡 봄이 온 줄 속을 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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