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8일은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이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는데, 국내에서도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거행한다. 이는...
4월28일은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날이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는데, 국내에서도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거행한다. 이는 불명예스러운 시상을 통해 기업의 책임과 경각심을 촉구하고,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로, 2006년부터 매년 시행해 왔다. 20년이 되어가는 유서 깊은 행사이지만, 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 주최 측의 고민이 깊다. 중대재해처벌법 도 만들어졌겠다, 이제 굳이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 것이라면야 좋겠지만, 그럴 리가 있나.
행사 중단을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자료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2021년까지는 공동 주최 국회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이전 해 산재사망 사고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으면, 이를 정리해서 명단을 만들었다. 사고 발생일과 보고일, 원·하청 기업명과 사고 현장 주소, 공사 규모와 노동자 숫자 같은 기본정보를 토대로 기업별 사망 노동자 숫자를 집계하고 특성을 종합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2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노동부가 원·하청 기업명과 사고 현장 주소 같은 핵심 정보를 누락한 채 자료를 제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청 기업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2023년에도 기업명을 비롯한 기본정보를 모두 가린 채 자료를 제출했다. 그래서 2023년 최악의 살인기업 수상자는 “선정할 수 없음”이 되고 말았다. 올해도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재해조사 대상인 사망사고를 기준으로 할 때, 2023년에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총 598명이다.
노동부가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개인정보 침해와 법인의 명예훼손 문제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면서 좋은 핑계도 생겼다. 사고가 중대재해에 해당하는지, 사업주가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검찰 기소와 재판을 통해 확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사업장 명단이나 ‘피의 사실’을 공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본주의 ‘본진’이자 정부가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미국 사례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친기업적이다. 미국 노동부 직업안전보건청은 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따로 제공하고 말 것도 없이, 지난 4월19일에 2023년치 산재 데이터 전체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여기에는 37만5000여개 작업장들이 자체 보고한 업무 관련 손상과 질병에 대한 요약 정보, 고위험 산업의 100인 이상 기업에서 일어난 개별 손상과 질병의 상세 내역이 모두 담겨 있다. 미국 노동부는 이렇게 자료를 공개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산재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작업 환경과 작업장을 식별할 수 있고, 이를 예방과 관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피해 노동자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 아직 공개하지 못한 일부 자료에 대해서도 검토와 보호조치를 통해 추후 공개할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미국 노동부는 2017년부터 재해조사 결과도 데이터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빌미 삼아 기업을 보호하는 것은, 그 법을 만들기 위해 풍찬노숙했던 산재 유가족들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다. 정부가 지켜야 할 것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이끈 기업들의 명예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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