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우리는 ‘물질’ 외에는 그 어떤 공통 목표와 공통 준거를 창출하지 못했다. 둘로 쪼개졌으되 같은 절차에 매몰된, ‘탄핵을 통한 청산’ 대 ‘사법을 통한 청산’, 그리고 비상계엄과 탄핵파면의 충돌을 극복할 공통 준거는 무엇일까? 두 가지다. 민주화 이후 첫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이 개헌과 연정을 제안했을 때 이를 끝내 반대한 지도자는 본인의 집권 후 탄핵위기에 직면해서야 개헌을 주장하고, 결국 파면·구속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나라와 시대의 공통 준거를 잃었다. 사상가 함석헌의 말을 빌리면 시대의 말씀, 전체의 말씀을 잃었다. 이념과 가짜 사실, 인물과 진영의 포로가 되어 잃어도 완전히 잃었다. 지금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점이라는 불행한 징표는 우리가 함께 꿈꿀 공통의 미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로 쪼개졌으되 같은 절차에 매몰된, ‘탄핵을 통한 청산’ 대 ‘사법을 통한 청산’, 그리고 비상계엄과 탄핵파면의 충돌을 극복할 공통 준거는 무엇일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법과 정치의 분리다. 두 번째는 헌정수호를 넘어 헌정개혁이다. 인류에게 정치학을 처음 제시한 대철학자에 따르면 사법은 과거를 향하며 정치는 미래를 향한다. 정확한 통찰이다. 탄핵과 사법 절차를 헌재와 법원에 맡기고, 정치는 미래를 담당해야 한다. 탄핵·사법절차와 분리된 정치의 부활이다. 비상계엄과 내란사태까지 초래한 현행 헌정체제를 방치한 채 대체 다른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사람과 하위 법률을 계속 바꿨는데도 불구하고 헌정질서는 왜 이리 점점 더 나빠지는가? 지금은 사회개혁이 아니라 나라의 근본인 헌법개혁과 정치개혁에 나설 때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국민 의사도 같다. 그러나 개헌문제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 정당들이 지지자들의 의사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12월 3일 이후 ‘사법’과 ‘거리’와 ‘마음속’에서 더 악화하는 현실을 보라. 대선 이전의 절차와 결정과 판정은 물론 대선 이후엔 더 악화할 것이 분명하다. 헌법정치의 대타협에 실패한다면 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미래의 실패는 불문가지다. 헌법정치가 일상정치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헌법정치에 관한 한 사람이 문제가 결코 아니다. 최근 세 대통령의 연속 실패를 보라. 왜 굳이 예정된 실패의 길을 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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