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는 죽음] ④ '좋은 죽음' 위한 법과 제도…우리 현실은
임기창 기자 김덕훈 인턴기자="인간은 이 세상을 잠시 스쳐 가는 나그네라고 생각합니다. 사는 동안 최대한 욕심을 버리고,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빈손으로 가야만 하는 인간은 경쟁을 통한 끝없는 탐욕의 삶에 지칩니다. 그러다 나그네로서 가야만 하는 길, 영원한 안식처로 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만약 내가 병에 걸려 임종 과정에 이른다면 연명의료를 통해 생존 상태를 유지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온전할 때 이런 의사를 기록으로 남기려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이미 등록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삶은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영원하지도 않을 세상, 고통을 받는 것보다 빨리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다만 회복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제도는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대만 등 많은 국가에서 먼저 도입됐다. 흔히 의사조력 자살과 묶여 '존엄사'로 불리지만 국내법상 명칭은 '연명의료 결정'이며, 존엄사보다는 가치중립적인 이 용어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담당 의사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이유를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가족들은 환자가 1년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더는 고통받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중환자실 치료를 강하게 거부했다. 담당 의사는 환자가 임종 과정에 진입했다고 확신할 수 없어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담당 의사는 환자가 임종기에 있다고 봐야 하는지, 온전한 정신으로 치료 거부 의사를 밝히는지에 대해 결국 다른 전문의들의 의견을 구해야 했다. 임종 과정인지에 대한 판단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임종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환자와 가족의 절박한 마음까지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명예교수는"정상인 뇌파가 100이라 한다면 식물 상태는 50, 뇌사는 0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현행법상으로는 뇌사도 장기기증을 하는 경우에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며"현재 국내에서 식물인간 상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법 적용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금지]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성인이 건강할 때 쓰는 것인데, 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죽음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필요성 등을 고민하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형법상 자살방조죄의 예외를 두는 법안이어서 윤리적 논란 소지가 크고 입법 가능성도 불투명하지만, 갈수록 노년기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삶의 질에 대한 우려, 그와 관련한 의료·복지제도 개선 필요성 등에 관한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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