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선 도무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약 일주일간의 휴가 중 딱 이틀만 거기 있었다. ...
문명과 유리된 시간을 보낼 거라는 기대로 들어선 리조트. 수영장 옆에 타월을 깔고 누우면 하늘과 바다의 존재감만 선명했다. 풍경을 보고, 파도 소리를 듣고, 젖었던 피부가 다시 마르는 동안 잊었던 감각들이 미세하게 살아났다.
리조트의 이름은 ‘식스 센스 야오 노이’. 식스 센스는 환경을 보존하고 지속 가능한 휴양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야오 노이는 태국 푸껫과 크라비 가운데 즈음에 있는 섬의 이름이다. 푸껫 아오포 그랜드 마리나 선착장에서 스피드보트를 타고 20~30분 정도 달리면 리조트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매니저의 환대를 받고 담당 스태프와 카트를 타고 빌라로 이동했다. 섬의 입구부터 숙소까지 점점 깊어지는 숲 냄새와 녹음을 느끼면서 마침내 작은 문 앞에 내렸을 때, ‘앞으로 며칠은 문명과 유리된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고 마는 곳이었다.
을 쓴 예술가이자 새 관찰자 제니 오델도 비슷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스페인 시에라네바다산맥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예약해둔 오두막에 도착했는데 휴대폰 신호도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 며칠 동안 연락 두절일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길 틈도 없이 떠나온 여행이었다. 답장하지 못한 업무 메일도 여럿이었다. 미리 받아둔 음악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 정신을 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0분. 제니 오델은 이렇게 썼다. 2023년을 달군 책, 을 쓴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도 유사한 깨달음에 대해 썼다. 요한 하리가 찾은 곳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이프타운 끝에 있는 작은 마을 프로빈스타운이었다. 단 한 번만 검색해봐도 그 마을이 어떤 무드인지 알 수 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목조 주택들, ‘아웃사이더의 마을’이라는 누군가의 호명. 우리가 ‘주류’라고 생각하는 흐름으로부터 한 걸음 정도 물러나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사진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곳이었다.
제니 오델과 요한 하리의 고립에 비하면 야오 노이에서의 시간은 그저 휴양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롭고 무료한 섬에서 회복과 몰입의 실마리를 되찾았다는 점에서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제니 오델의 은 거기서 완독한 책이었다. 서울에서는 2주를 붙잡고 있어도 못 읽던 책이었는데. 도대체 내 집중력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자괴감에 빠졌던 시간이었는데. e메일과 소셜미디어와 바쁜 일정 사이에서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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