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무 평전/김남일 지음’
1980년 두발 자유화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 단발머리를 벗어날 용기가 없는 중학생 소녀였다. 학교가 있는 초여름 수유리는 담장마다 장미꽃이 피고 떨어져 붉고 아름다웠다. 교문 밖 비탈길을 내려가 84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어느 토요일 오후, 어디선가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정류장에서 갈라진 길, 한신대 쪽에서 흰옷을 입은 대학생 시위대가 안개처럼 밀려왔다. 버스정류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그들은 흩어져 사라졌고, 신학대학교 골짜기에서 날아온 절규가 가시 박힌 꽃처럼 거리에 흩날렸다.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이 일상의 풍경으로 돌아갔지만, 조금 전 눈앞을 스쳐 간 희고 눈부신 옷들, 다급한 발소리, 시위대를 피하며 수군대는 사람들, 길바닥에 버려진 유인물, 비탈길을 되돌아가 그날 본 것, 그 무렵 떠돌던 ‘유언비어’에 관해 물었을 때, 학교에서는 누구도 ‘그 일’을 말할 수 없다며 눈을 피하던 젊은 사회 선생님의 슬픈 표정과 목소리…… 나는 오랫동안 그날을 잊지 못했다.
김남일 작가가 ‘안병무 평전’에서 쓴 수유리. 1953년 평신도교회 향린교회 설립에 참여해 책임사역자로 있다가 독일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안병무 선생이 1970년 봄 한국신학대학교 신학학 교수로 부임한 곳. 군사독재정권의 위수령 발동으로 대학에 군대가 주둔하고,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 활동 중지 등 현행 헌법의 기능을 일부 정지시키는 데 이어, 마침내 헌법까지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무도한 유신의 시절, 정부를 비판하는 말 한마디에 끌려가는 긴급조치 4호의 시절,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제자들을 제적하라는 정부의 강압에 삭발로 맞선 그곳. 교수들이 무더기로 해직된 1975년 학교를 떠나, 짧았던 서울의 봄, 1980년 2월에 복직되었으나, 그해 8월 다시 거리로 쫓겨난 안병무의 수유리. 그 변두리 골짜기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김남일 작가가 쓴 ‘안병무 평전’을 읽고서야 자세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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