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1880~1936)는 왜 1910년 4월 블라디보스톡 망명길에 오르면서 동사강목 1권만 들고 갔을까.
순암 안정복의 ‘동국역대전수도’. ‘단군조선- 기자조선-마한-문무왕 9년부터의 신라-태조 19년부터의 고려-조선’을 정통왕조로 규정했다. 삼국이 균형을 이룬 ‘삼국시대’는 ‘무통’이라 했다.|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1781년 정조 임금이 승선 정지검에게 특별한 명을 내렸다. 순암 안정복이 개인적으로 편찬한 의 필사본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이성계의 주장대로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자손일까. ‘세가·공민왕’조의 편찬자는 “자식이 없던 공민왕이 다른 사람의 자식을 데려다 대군으로 삼았다”는 평론을 달았다. ‘열전·신우’조도 “신돈의 비첩 반야가 모니노를 낳았는데, 공민왕이 자기 자식으로 여겼다”고 언급했다. ‘우왕=신돈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순암 안정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택재. 순암이 편찬한 은 ‘고조선~고려 공양왕’까지의 통사이다. 본편 17권, 부록 3권 등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광주시청·강세구 순암 안정복 연구가 제공그러나 ‘폐가입진’을 주장한 이가 다름아닌 태조 이성계인 이상 대놓고 문제를 삼을 수가 없었다.우선 퇴계 이황이 재미있는 평가를 내렸다. 즉 제자들이 “ 포은 정몽주가 신씨의 조정에서 관리로 활동함으로써 충절을 잃은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은 단군조선을 ‘정통의 첫머리’로 두었으면서 정작 본문에서는 ‘기자조선’부터 서술했다. 즉 ‘제1상’은 ‘기묘년 조선 기자 원년·주 무왕 13’부터 시작한다..‘단군조선’ 기사는 ‘기자조선’을 설명하면서 두번째 기사에 상당히 길게 붙여놓았다. 그러나 정조 임금의 눈에 들어 세손 시절부터 3차례나 부름을 받고 출사했다. 그것도 61살의 나이에 처음 세손을 지근거리에 모시게 되었으니 참 기막힌 인연이다. 그런 순암이 온갖 병치례의 와중에도 ‘골골 80’ 했던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순암은 ‘단군조선’을 정통의 첫머리로 삼았다. 의 ‘동국역대전수도’와 ‘단군·기자 전세도’ 등은 ‘단군조선’부터 시작한다. “우리 역사에 나타나는 첫 군주인 단군이 신성한 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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