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 등 여러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반성했고,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재난 안전 체계는 또다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났다. 젊은이들의 축제였던 그 날, 그 곳에서 사상 초유의 압사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시민들은 여전히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다. 정부는 8일 현재 156명이 사망하고 197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이 참사로 고통받는 실질적인 피해자는 훨씬 많다.
경향신문은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을 만나 참사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목이 메였고, 몸을 떨었다. 여전히 잠을 잘 수 없고, 집 밖에 나가기 힘들다고 했다. “지옥이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참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직접 글을 올리고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참사 후 어떤 사람들은 골목의 술집이 문을 안 열어줘 피해가 커졌다고 했지만 A씨는 술집에서 문을 열어줘서 살았다. 술집에서 잠시 대피했다가 공간에 여유가 생긴 뒤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A씨는 15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나오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멍하니 서 쳐다볼 뿐이었다.
생존자들은 자책하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비난’을 심리적 방어기제의 작동으로 분석한다. ‘핼러윈 파티에 가지 않는 나는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식이라는 것이다. A씨가 말했다. “동네 슈퍼에 가서 장을 보다가 죽었다고 하면 그 사람한테 슈퍼에 왜 갔느냐고 안 하잖아요. 나는 늘 가던 곳이고 때마다 갔는데 말이죠. 할머니들이 가수 임영웅 콘서트에 간 것과 같은 예인데요. 각자 취미생활이 있잖아요. 이태원에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 동네 길이고, 동네 편의점 같은 곳이예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이태원을 인식하고 있는데 일상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경찰은 참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밀었다는 의혹을 받은 ‘토끼 머리띠’ 남성을 조사한 뒤 무혐의 처분했고, 아보카도 오일을 뿌려 사람들을 미끄러지게 했다는 의혹을 받은 ‘각시탈’ 남성들은 수사 중이다. 골목에서 1시간10분 넘게 깔려있다가 구조된 D씨는 고의로 민 사람들이 있다면 잡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D씨는 “저희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뒤로’라고 외쳤지만 ‘밀어’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며 “사람들이 자기 갈길만 가려고 하고 그 사이에 낀 사람들은 이동할 수가 없었다. 조금씩만 양보했으면 됐을텐데…”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D씨는 “꼭 여의도 축제만 100만명이 오는 게 아니라 이태원에도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골목에 경찰이 한 두명이라도 배치됐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싶다”며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고, 꿈이 깼으면 좋겠다”고 했다.
트라우마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던 F씨는 다산콜센터에 전화했는데, 사망자·실종자·부상자·목격자·유가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라 ‘참사 현장에 있던 피해자’라고 설명했더니 콜센터에선 그런 사례가 매뉴얼에 정확히 기재돼 있지 않다고 했다. 트라우마센터 연락처를 안내받은 F씨는 스스로 병원에 다니며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했다. 이태원이 일터인 F씨에게 참사는 그야말로 일상이다. F씨가 말했다. “저는 그 길을 다시 지나가야 한단 말이예요. 옆길로 갈 수는 있겠지만 평생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핼러윈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곳이었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고 생각해요. 어느 콘서트, 행사장, 대규모 집회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요. 놀러갈 수 있죠. 코로나 이후 첫 핼러윈이고, 주최는 없지만 ‘핼로윈은 파티하는 날’이라는 게 다 정해져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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