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는 '주여'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교회 세습, 인기 영합, 세속 정치 관여 등 예수를 세 번 부인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진 않은가. 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 번이 아니라 서른 번이라도 ‘기꺼이’ 부인하는 자들로,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에만 골몰해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진 않은가. 더 늦기 전에 한국 교회도 ‘교회를 위한 예수’에서 ‘예수를 위한 교회’로 되돌아가야 할 때다.
예수가 열두 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한 뒤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혀 가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바로 조금 전에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 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중 속에 숨은 그는 예수와 함께 있던 자로 지목되자 맹세까지 하며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다. 예수가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 라 칭하며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했을 만큼 아꼈던 수석 제자도 세상의 안위 앞에선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닭이 울자 그는 통곡하며 회개했고, 예수 부활 후 초대 교회 지도자로 복음 전파에 헌신하며 진정한 반석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2000년이 지난 지금 그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특히 한국의 개신교 교회는 어떠한가. 베드로의 반석을 온전히 계승·발전시키고 있는가. 불행히도 교계 지도자부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진 않은가. 입으로는 “주여”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교회 세습, 인기 영합, 세속 정치 관여 등 예수를 세 번 부인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진 않은가. 심지어 존경받던 원로목사들마저 평생 쌓아온 명예와 지조를 뒤로하고 잇따라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실망하며 허탈해하고 있는가. 그러는 사이 개신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신뢰도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조사에서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신뢰하지 않는다’도 2020년 64%에서 6년 새 75%까지 상승했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6일 발표는 더 충격적이다. 전국 만 19세 이상 7647명을 다섯 차례에 걸쳐 심층 면접 조사한 결과 비종교인이 60%에 달했는데, 이들에게 과거에 믿었던 종교를 묻자 절반이 넘는 51%가 개신교라고 답했다. 게다가 호감이 가는 종교도 불교 15%, 천주교 11%에 비해 개신교는 6%에 불과했다. 이탈률도 가장 높고 향후 종교를 믿더라도 택할 확률조차 가장 낮은 ‘기피 종교’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단지 목사들 탓만 할 수 있을까. 일반 성도들의 모럴 해저드는 어떤가. ‘예수’를 세속적 욕망 충족의 수단이자 방패막이로 삼고 있진 않은가. 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 번이 아니라 서른 번이라도 ‘기꺼이’ 부인하는 자들로,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에만 골몰해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진 않은가. 장로나 안수집사 직분도 ‘섬김의 자리’가 아니라 ‘권력의 획득’이자 ‘세상의 감투’로 여기는 풍조가 곳곳에 만연해 있진 않은가. 이는 무엇보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잊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높이 걸려 있지만 그 십자가의 정신은 바닥에 내려놓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영화 세트처럼 화려한데 정작 속은 텅 비어 있는, 현실과는 유리된 그들만의 성채 속에서 그들만의 만족만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한국 교회는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다. 주일학교는 이미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2030년엔 한국 교회의 90%에서 자취를 감출 거란 전망도 나온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사라지고 노인들만 남은 교회에서 그 누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5일은 기독교가 성탄절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하지만 단순한 축일을 넘어 부활의 참뜻을 되새겨보는 교인이 몇이나 될까. 잊지 말아야 할 건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도 가능했듯 나의 세속적 욕망을 죽여야 교회가, 개신교가 산다는 평범한 진리다. 교회는 건물로 서는 곳이 아니라 겸손·헌신·사랑으로 서는 곳이어야 한다. 그게 예수가 베드로에게 맡긴 ‘반석’의 진정한 의미다. 더 늦기 전에 한국 교회도 ‘교회를 위한 예수’에서 ‘예수를 위한 교회’로 되돌아가야 할 때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아픔은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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