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Breaking News

[에디터 프리즘] 노라 노, 못 다한 이야기

에디터 프리즘 News

[에디터 프리즘] 노라 노, 못 다한 이야기
이야기이브닝드레스아리랑

노 디자이너가 1950년대 초부터 갑사·양단 등의 한복 원단과 금박·은박 등의 한복 모티프를 기본으로 디자인한 이브닝드레스 이름이 바로 ‘아리랑 드레스’다. '외교관 부인들이 한복 말고도 파티복이 필요하다고 해 한복 라인을 따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이브닝드레스를 만들고 누구나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아리랑’이라 이름 붙였죠.' 7월 16일까지 경운박물관에서 열리는 ‘노라 노 Nora Noh: First & Forever’전에 가면 입구 프롤로그 섹션에서 아리랑 드레스의 여러 버전 사진과 실물을 만날 수 있다.

지난 3일 BTS 의 특별한 숏폼 미니 다큐멘터리 ‘KEEP SWIMMING with BTS ’가 공개됐다. 5집 앨범 ‘ 아리랑 ’의 타이틀곡 ‘SWIM’이 품고 있는 핵심 메시지, “멈추지 않고, 계속 헤엄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하고 훌륭한 전진”임을 실천한 인물과 그 삶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첫 번째 주인공 박찬욱 영화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된 인물이 노라 노 패션 디자이너다.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이자 올해 98세인 현역 디자이너.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처럼 자아를 찾아 독립된 여성으로서 한길을 꾸준히 걸어온 당찬 여성. 그녀와 BTS는 ‘아리랑’이라는 공통분모도 있다. 노 디자이너가 1950년대 초부터 갑사·양단 등의 한복 원단과 금박·은박 등의 한복 모티프를 기본으로 디자인한 이브닝드레스 이름이 바로 ‘아리랑 드레스’다. “외교관 부인들이 한복 말고도 파티복이 필요하다고 해 한복 라인을 따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이브닝드레스를 만들고 누구나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아리랑’이라 이름 붙였죠.” 7월 16일까지 경운박물관에서 열리는 ‘노라 노 Nora Noh: First & Forever’전에 가면 입구 프롤로그 섹션에서 아리랑 드레스의 여러 버전 사진과 실물을 만날 수 있다. 전시기획을 맡은 서영희 감독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적 사교 현장에 완벽히 어울렸던 아리랑 드레스와 일찌감치 영어를 배우고 혈혈단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도전 정신이 지금의 노라 노를 있게 했다”고 소개했다. 아리랑 드레스는 2014년 10월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613호로 지정됐다. 흔히 ‘패션’이라고 하면 화려함을 좇는 일로만 생각되지만 노라 노의 패션은 여성의 품격과 자유로움이 먼저였다. 노라 노와 각별한 인연인 1965년 미스코리아 선 최승자씨의 딸로, 노라 노의 패션세계를 연구하고 논문까지 쓴 한수영 의류학 박사는 “국산 원단 수준이 척박했던 1950~70년대, 노라 노는 단순히 디자이너의 수준을 넘어 국산 원단 생산가로서의 역할도 해낸다. 덕분에 우리 면직·모직·견직물의 수준이 한 단계 오른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패션 수준도 올라갔다”며 “그가 기성복을 우리나라에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노라 노는 1963년 명동 미우만 백화점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다. 의상실에서 맞춤복을 만들며 수많은 여성의 사이즈 데이터를 축적해 ‘한국 여성 표준 사이즈’ 기준을 만든 결과다. 돈 있는 이들은 고급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지만 서민들은 옷감을 사서 직접 옷을 만들어 입거나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구제 옷을 입어야 했던 시절, 상점에서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을 이리저리 골라 입어보고 구매할 수 있는 ‘기성복’이란 얼마나 놀라운 혁신이었던가! 누구보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그녀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은 “과거 신세진 사람들을 찾아가 고마웠다고 인사하는 일”이다. “둘 다 싱글이라 오랫동안 자매처럼 지낸 친구가 어느 날 불쑥 내게 큰 절을 하는 거예요. ‘내 정신이 온전할 때 꼭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어. 노라야, 네 덕분에 단조로울 수 있었던 내 인생이 풍요로웠어. 고마워’라면서 말이죠. 몇 해 후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는데 만약 그때 그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 친구가 나와 함께한 시간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영원히 몰랐겠죠.” 수십 년의 가위질에 거칠어진 손으로 고마운 사람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노 디자이너. 그녀의 느리지만 고요하고도 행복으로 충만한 하루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머리를 스친다.

We have summarized this news so that you can read it quickly. If you are interested in the news, you can read the full text here. Read more:

joongangilbo /  🏆 11. in KR

이야기 이브닝드레스 아리랑 여성 기성복 BTS 노라 노 OPINION

 

United States Latest News, United States Headlines

Similar News:You can also read news stories similar to this one that we have collected from other news sources.

작년 미국 기업 71년만에 가장 장사 잘됐다…이익률 13% 넘겨 | 연합뉴스작년 미국 기업 71년만에 가장 장사 잘됐다…이익률 13% 넘겨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지난해 미국 기업들이 1950년 이후 가장 높은 이익률을 누린 것으로 집계됐다.
Read more »

제주 해녀들, 어떻게 독도서 물질 하게 됐나제주 해녀들, 어떻게 독도서 물질 하게 됐나'독도야 잘 이서시냐(있었느냐). 다시 오난(오니) 눈물 남쩌(나네).”
Read more »

‘낙하산 블라우스’를 아세요…근현대 유물 등록문화재 된다‘낙하산 블라우스’를 아세요…근현대 유물 등록문화재 된다문화재청은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1960년대 신생활복’, ‘일제강점기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 등 3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7일 밝혔다.
Read more »

‘노트르담의 꼽추’ 지나 롤로브리지다 별세…향년 95‘노트르담의 꼽추’ 지나 롤로브리지다 별세…향년 95‘20세기 모나리자’로 불린 이탈리아 영화계의 전설적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16일(현지시각) 별세했습니다. 향년 95. 🔽 1950~60년대 풍미한 이탈리아 전설적 배우
Read more »

여긴 어디? 1950~1980년대 다큐 사진 찍은 이들은 누구?여긴 어디? 1950~1980년대 다큐 사진 찍은 이들은 누구?44년이 흐른 지금 임응식, 김기찬은 이미 고인이 됐고, 최근 뒤늦게 김녕만 작가에 의해 프린트되어 나온 사진은 묵직한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 자세히 읽어보기
Read more »

18세에 산화한 6·25 전사자 유해...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18세에 산화한 6·25 전사자 유해...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18세에 산화한 6·25 전사자 유해... 73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사자 고_이승옥_이등중사 김도균 기자
Read more »



Render Time: 2026-05-22 06:3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