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 예수는 종종 악령을 물리친다. 단순히 ‘엑소시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예수의 권능이 악마를 물리쳤다는 해석이다. 그렇게만 읽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성서의 파도가 거기서 멈추고 만다. 다시 말해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그런데 성서 속의 일화는 아무 - 백성호의 현문우답,디지털,예수 일행,예수 당시,갈릴리 호수
성서에서 예수는 종종 악령을 물리친다. 단순히 ‘엑소시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예수의 권능이 악마를 물리쳤다는 해석이다. 그렇게만 읽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성서의 파도가 거기서 멈추고 만다. 다시 말해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그런데 성서 속의 일화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우리의 심장을 겨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품고 있는 우리의 오해와 착각을 겨냥한다. 예수의 악령 퇴치 일화도 그렇다. 단순히 초자연적인 스토리가 아니다. 거기에는 깊은 영성의 우물이 숨어 있다. 거기서 두레박을 길어올리는 게 우리의 몫이다.나는 갈릴리 호수 의 동쪽으로 갔다. 거기서 바라보는 호수의 풍경은 또 달랐다. 호수 건너편으로 숙소가 밀집한 번화가 티베리아스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팔복 교회와 가버나움이 있는 동네가 아스라하게 보였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 사이로 노을이 내렸다. 호수 동편에는 골란 고원이 펼쳐져 있었다.
단순하게 읽으면 악령을 퇴치하는 ‘엑소시즘’ 일화다. 다만 그뿐일까. 나는 성서를 다시 읽었다. 깊이 읽었다. 이 일화에는 ‘엑소시즘’을 넘어서는 깊은 영성의 울림이 담겨 있다. 나는 누가복음 4장을 다시 펼쳤다. 예수가 악마를 처음 만난 곳은 광야였다. 그곳에서 40일 동안 악마와 싸웠다. 악마의 이름은 세 가지였다. 빵과 권력, 그리고 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 악마들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을까. 세상의 모든 현자들은 인간으로서 시행착오를 겪던 끝에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이 직접 ‘인간’을 경험하지 않으면 인간을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인간’을 알지 못하면 그들에게 이치를 전할 수도 없다. 어둠을 지나온 사람이 어둠을 안다. 어둠을 지나오지 않은 사람은 어둠을 알지 못한다.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빛을 일깨우려면 먼저 어둠을 알아야 한다.
‘마귀들과 돼지떼’ 일화는 마가ㆍ마태ㆍ누가복음의 세 복음서에 등장한다. 마태복음에는 마귀 들린 사람이 두 명으로 기록돼 있고, 나머지 두 복음서에서는 한 사람으로 나온다. 예수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물음에 대한 마귀 들린 사람의 답이 놀랍다.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이유도 덧붙였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 성서에서 ‘군대’라는 단어는 ‘legeon’이다. 영어로는 ‘legion’이다. 로마 시대의 군대에서 ‘군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무슨 뜻일까. 그 사람 안에 마귀가 떼로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그건 우리들 속에서 살고 있는 욕망의 숫자와 겹친다. 내 안의 욕망, 내 안의 집착, 내 안의 고집. 그 숫자가 어디 한 둘일까. 수십, 수백, 수천으로도 어쩌면 모자라지 않을까. 그걸 세어 보기에 말이다. 그러니 ‘군대’다.
이 일화에는 뜻밖의 대목도 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예수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마귀 들린 사람은 놀랍게도 ‘하느님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게 누구의 소리일까. 하느님의 소리일까. 아니면 마귀의 소리일까. 그렇다. 그건 마귀의 소리다. 우리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의 소리다. 그 욕망은 수시로 ‘하느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2000년 전의 성서는 이미 그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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