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생명을 살리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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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11일 1호선 종로3가역에서는 환성과 박수 소리가 오랫동안 울려퍼졌다. 승강장에 있던 여자 승객이 선로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역 직원이 발견한 건 의정부행 K322 열차의 진입 알림이 울린 뒤였다. 직원은 곧바로 따라 내려갔다. 선로 위에 누워 있던 승객을 끌어안고 가운데 기둥 사이로 재빨리 엎드리는 순간 열차는 굉음을 울리며 두 사람을 스쳐..

1989년 7월 11일 1호선 종로3가역에서는 환성과 박수 소리가 오랫동안 울려퍼졌다. 승강장에 있던 여자 승객이 선로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역 직원이 발견한 건 의정부행 K322 열차의 진입 알림이 울린 뒤였다. 직원은 곧바로 따라 내려갔다. 선로 위에 누워 있던 승객을 끌어안고 가운데 기둥 사이로 재빨리 엎드리는 순간 열차는 굉음을 울리며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반대편 선로에서는 인천행 K359 열차가 들어오는 아찔한 순간이 이어졌다. 시민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든 직원은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수습사원이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여전히 뭉클하다. 평범한 직원의 대담한 용기가 큰 울림을 준다. 한편으론 생을 내려놓고 선로에 몸을 던져야만 했던 승객의 마음은 어땠을지 헤아려보게 된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지하철은 극단적 선택을 위한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지하철에 투신해 목숨을 끊는 사고가 연평균 34건에 이를 정도였다. 술에 취해 선로로 추락하거나 누군가 밀어서 선로 위에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도 드물게 있었다. 그러다 2006년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하철 이용자의 안전과 승강장 공기 질 개선을 위해 모든 역에 승강장안전문 설치를 결정하면서부터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꼬박 5년에 걸쳐 약 48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대공사였다. 열차가 승강장에 정차하면 열차 출입문과 함께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당시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 중 모든 역에 승강장안전문을 갖춘 곳은 서울지하철이 유일했다. 그 덕분에 최근 10년간 서울지하철에서 선로 투신에 의한 자살 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연간 수십 명의 생명을 살린 셈이다.

승강장안전문이 우리 일상에 던진 변화는 물방울의 파동처럼 번져나갔다. 승객 안전 확보는 물론 승강장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과 바람을 차단해 미세먼지 농도가 약 20%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 여름철에는 좀 더 시원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냉방기가 내뿜는 차가운 공기가 승강장에 머물지 못하고 선로와 터널로 빠져나가는 것을 승강장안전문이 막아줌으로써 냉방 효율이 약 30% 좋아졌기 때문이다. 소음이 상당히 줄어든 것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 가운데 하나다. 승강장안전문의 두꺼운 유리벽 위에 써 내려간 시가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건 덤이다.

최근 화성 공장 화재, 역주행 사고 등이 연달아 발생하며 안전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점검을 내실화하고 교육을 강화하는 활동은 필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인명과 직결된 부분은 과감히 조치함으로써 잠재적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일이다. 승강장안전문 사례처럼 누군가의 작은 시도가 큰 사고의 예방으로 발전해 사회 전체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듯, 반복되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대한민국의 안전의식을 바꾸는 중대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생명을 살리는 문, 승강장안전문의 교훈을 되새겨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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