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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이 내려졌다가 국회에 의해서 저지된 다음날 여느 날처럼 학교에 수업을 하러 나갔다(나는 대학에서 글쓰기 교양 수업을 강의 중이다). 언제나처럼 수업에 들어가기 전, 강의동 5층 휴게공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일주일 전만 해도 눈이 엄청 내렸었는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건물과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로 난 길은 완전히 깨끗해져 있었다. 월요일에 ..

계엄령이 내려졌다가 국회에 의해서 저지된 다음날 여느 날처럼 학교에 수업을 하러 나갔다. 언제나처럼 수업에 들어가기 전, 강의동 5층 휴게공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일주일 전만 해도 눈이 엄청 내렸었는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건물과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로 난 길은 완전히 깨끗해져 있었다. 월요일에 갑자기 날이 푹해져서 그사이에 눈이 다 녹은 듯했다.

내 수업의 대부분은 정해진 주제로 학생이 쓴 글을 발표하고, 다른 학생들이 질문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글쓰기 주제는 '트라우마'였다. 광주 출신의 한 학생이 어떻게 5·18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 광주 시민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는지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 주위 어른들에게 들은, 5·18 때의 참상이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악담을 한다고. 한번은 과 친구들에게 5·18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그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답이 돌아왔다고. 발표가 끝나고 약간 침묵이 흐른 후 발표를 듣고 있던 학생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 대통령 탄핵을 함께하자는 대자보가 붙어 있었어요. 그 아래에 이름을 적어달라고 빈칸이 있었는데, 한참 동안 이름을 써도 되는지 그런 걸 고민했어요. 이름을 남기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이런 걸 무서워하는 제 자신이 너무 짜증 났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 안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전날 밤의 일은 무언가를 남겼다. 강의실 안 스무 살짜리 아이들 마음속에 무언가를 남긴 것처럼. 퇴근 시간의 전철 안은 점점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움츠리고 있던 내 눈에 우연히 내 근처 사람의 휴대전화 화면이 들어왔다. 그는 그 좁은 공간 속에서 여행 사이트를 켜고 발리의 호텔을 찾고 있었다. 이 혼란하고 무서운 세상 속에서도 열심히 휴양지의 호텔을 찾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쩐지 슬프기도 하고, 그리고 약간은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안도감?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토요일날 같이 집회에 나간 친구는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친구는 집회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고 내게 문자를 보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문자를 보다가 갑자기 나는 휴대전화를 뒤져, 눈이 엄청나게 오던 11월 말에 5층 휴게공간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이 그토록 펑펑 내리고 모든 곳이 눈투성이였지만, 길 위에는 눈이 하나도 쌓여 있지 않았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을 계속 치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겠지. 돌이켜보면 그분들은 봄에는 캠퍼스 여기저기에 수북하게 떨어진 꽃잎을, 가을에는 낙엽을, 겨울에는 눈을 치우시느라 언제나 바빴을 것이다. 언제나 할 일을 찾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뒤지지 않는 비관주의자이지만, 친구에게 답을 보냈다."아직 울지 말자. 지치지 말자." 뻔하디뻔한 말이었지만 그건 나의 완전한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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