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는 일본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개발연대기 한국의 성장모델이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캐치 업(catch up)’ 전...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에는 일본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개발연대기 한국의 성장모델이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캐치 업’ 전략에 기반하고 있었던 데다 당시만 해도 일본이 꽤 괜찮은 경제모델로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가전업체 조지루시가 만든 코끼리 밥솥이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구매 대상이 될 정도로 ‘일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돌아보면 일본이 이후 걸어간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이었지만 말이다.
최근엔 다시 일본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주로 자본시장 영역에서 그런데, 작년부터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매수가 본격화되고 있고, 지난 2월 발표된 정부 주도의 주가 부양 프로그램인 ‘밸류업 방안’ 역시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 만들어진 정책이다. 일본은행의 유동성을 푸는 방식도 파격적이었다.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은 만기가 짧은 단기국채 매입을 통해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민간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단기국채를 팔면, 중앙은행은 국채 매입자금을 민간은행이 중앙은행에 개설한 지급준비금 계좌에 넣어줌으로써 유동성 공급을 늘린다. 중앙은행이 만기가 긴 장기국채와 주택담보부채권 등을 매수하는 양적완화도 교과서적인 중앙은행의 활동 범위를 넘어서는 정책이었지만, 일본은행은 파격적으로 주식까지 매입했다. 일본 증시 상승에는 일본은행이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일본의 탈디플레이션 정책이 일본 고령자들에게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도 관심 있게 지켜볼 포인트이다. 디플레이션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을 상징하는 병리적 현상이다. 경제가 끓어오르면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이 급성질환이라면, 디플레이션은 경제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만성질환이다. 디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고착화되면 소비가 위축된다.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꼭 필요한 소비만 이루어지고, 예비적 동기 또는 재고 확보 목적의 소비는 이뤄지지 않게 된다. 곧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공고한 상황에서는 당장 구매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디플레이션은 경제에 큰 해악을 미치지만 고정된 수입으로 살아가야 할 연금생활자들은 디플레이션 친화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은퇴한 연금생활자들이 대표적이다. 연금 수령액이 물가에 연동해 조정된다고 하더라도, 물가지수가 생활물가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연금소득은 기본적으로 경직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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