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대북 강경파였던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최근 북한 비핵화를 “먼 미래의 목표”로 두고 “평양과...
통일부 장관 지낸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인터뷰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이 지난 5월 4일 서울 여의도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대북 강경파였던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석좌가 최근 북한 비핵화를 “먼 미래의 목표”로 두고 “평양과 군비 축소”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석좌는 2000년대 중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선비핵화-후경제지원’ 방식을 고수했던 인물이다. 그는 CVID 방식 유지는 “실패만 더욱 심화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핵 군축’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1단계로 가장 현실적인 중단 협상을 하고, 그다음 핵 군축 협상을 하자. 길게는 비핵화를 향해 가자”고 했다. 당시 청와대는 핵 군축 단어에 “어떤 의미를 담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핵 군축 논의에 대한 예고로 해석됐다. 문재인 정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은 지난 5월 4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정책과 협상은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며 “차 석좌의 발언은 워싱턴의 전문가들도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핵·미사일 중단과 군축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며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핵 군축 논의가 북핵 인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는 “선비핵화라는 기존 원칙을 고수했을 때 벌어지는 현실은 북핵 상황의 악화다. 반면 핵 중단을 목표로 한 협상을 시작했을 때 벌어지는 현실은 상황 악화를 막을 기회 확보다. 어떤 걸 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이사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측근이기도 하다. 정 장관이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할 때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한국의 운신 폭이 넓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파키스탄 같은 중재자 역할 맡아, 실무진이 부재한 미국의 공백 메워야. ” -북한은 자신들이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핵 보유를 2023년 9월 헌법에 명기했다. 지난 2월 9차 당대회에서 당규약에도 명기한 것으로 보인다. 단계적 비핵화가 비핵화 불가로 후퇴한 것이다. 핵·미사일 중단과 군축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며 실용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3단계 비핵화론의 첫 단계를 동결이 아닌, 그보다 검증 필요성이 낮은 중단이라고 부른다. 대화 국면에 진입하기 위해 문턱을 낮춘 것이다. 작은 합의와 그 이행으로 신뢰를 쌓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비핵화에 이르는 전체 로드맵을 합의한 이후 이행하지 못했던 전례를 반복할 순 없다.
” -핵 군축이 결국 북핵 용인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고, 중국이 군축보고서 등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비핵화를 포기해서가 아니다. 북한과 협상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는 살아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지난 1월 27일 성능을 개량한 대구경 방사포의 시험 발사를 참관하고 있다.
북한은 대구경 방사포에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핵 군축 논의 중 하나로 주한미군 감축도 다뤄질 수 있나.
“군축은 병력·장비를 줄이지 않은 채 훈련·배치 등의 운용을 제한하는 운용적 통제와 병력·장비를 직접 줄이는 구조적 통제가 있다. 예컨대 9·19 군사합의가 운용적 통제다. 현재처럼 낮은 신뢰수준에서 운용적 통제에 대한 협상만이 가능하다. 이를 주고받다 보면, 종국에는 주한미군이나 미국의 확장억지에 대한 변화와 같은 높은 신뢰수준의 논의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재래식 분야 군축은 남과 북이, 핵무기 분야 군축은 북·미가 주요 주체다.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의 군축을 병행할 필요가 있고, 이 과정에서 한·미가 협력해야 한다. ” -남한도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간 유일한 핵 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이 지난 2월 종료됐다. 핵 관련 국제사회의 규범이 약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을 중심으로 핵확산 움직임에 대해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한 노력보다는 기존 규범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비핵화 규범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 -북한이 2023년 ‘적대적 두 국가’ 선언 후 헌법 개정 등 단절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높아진 군사적 긴장이다. 두 번째는 격차가 벌어진 남한으로부터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서다. 북한의 통일 방안은 연방제에서 1991년 ‘느슨한 연방제’, 2000년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변해왔다.
국가 연합에 가까운 쪽으로 변화해온 것이다. 적대적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두 국가 주장은 예상됐던 변화다. 세 번째는 하노이 회담 결렬로 남방정책에 실패를 경험한 북한이 북·러를 중심으로 한 북방정책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이탈해 외교적·경제적 공간을 넓히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국면 차원의 변화가 아닌 구조 차원의 변화에 가깝다. 남북 분단이 강화되는 것은 동북아 지역에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분단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적대적 두 국가를 되돌리긴 어렵다는 뜻인가.
“아니다. 현재의 구조 역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얻는 기대 이익에 따라 자신들의 정책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 중국·러시아와 관계에서 자신을 유리하게 만들 지렛대를 얻게 된다.
현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한의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흡수통일을 꾀한다고 본다.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북한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대신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국익에 준해 냉정하게 계산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교류·협력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접근보다는, 북한의 이익과 남한의 이익이 겹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새로 구성한 최고인민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국내에서도 차라리 두 국가로 살자는 의견이 있다.
“남한의 대북정책은 헌법과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추진해야 하기에 북한의 노선과 괴리가 있다. 그렇다고 두 국가 형태로 서로 간섭하지 말고 살자는 이른바 ‘차가운 평화’는 대안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 유지는 러닝머신을 뛰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 상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두 국가로 서로 간섭하지 않게 되면, 평화 유지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우선 적대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적대성이 완화되면 두 국가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논의할 공간이 생길 수 있다. 통일이 꼭 ‘1민족 1국가 1체제’ 형태인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정부 이래 유지돼온 남북연합론도 통일의 한 모습일 수 있다. 미국·호주뿐 아니라 스위스나 벨기에도 언어나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연방제를 실시한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사실상의 국가 연합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을 그들의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것도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법적인’ 국가 승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 -지난해 한·미 연합훈련의 선제적 조정 등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 내 갈등이 있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시 핵시설 발언 논란의 배경에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이 있다는 시선이 있다.
“자주파와 동맹파라는 호명은 노무현 정부 당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외교부 내 북미국과 조약국의 갈등에서 시작됐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논란과 다른 맥락으로 해당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북·미관계는 남북관계와 뗄 수 없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강조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자주파 동맹파로 분류하는 것은 색깔론의 연장선이다. ”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이 지난 5월 4일 서울 여의도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5월 중순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가 만날까.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때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제안을 거부한 이유는 협상을 기대할 만한 정책 변화가 없었고, 차이를 조율할 수 있는 실무 차원의 의견교환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2월 시작된 중동전쟁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란은 스몰딜을 통한 단계적 협상을 원하지만, 미국은 빅딜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북한도 이란처럼 단계적 협상을 원한다. 빅딜을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과 단계적으로 접근하자는 북한의 근본적 차이 때문에 협상을 위한 만남은 물론 보여주기식 만남에도 김 위원장은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에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비일관적 태도와 발언도 그에 대한 신뢰도를 낮췄을 것이다. ”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란과 미국 전쟁에서 파키스탄이 맡은 중재자 같은 역할이다. 이란과 협상에서 미국 실무진들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하향식 결정만 이뤄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협상에 진척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중재자인 파키스탄이 실무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중국은 중동전쟁 등으로 북·미 협상의 중재자로 나서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 폭이 넓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실무진이 부재한 미국의 공백을 한국이 메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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