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면담하지 않는다면 그가 행한 전례, 일관성에도 어긋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4월 19일...
일본에 '재팬 핸들러'라는 말이 있다. 일본 정부의 수법을 꿰뚫어 보면서 일본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일본통을 가리키는 용어다. 조지프 나이, 리처드 아미티지, 커트 캠벨, 마이클 그린 등이 대표적인 '재팬 핸들러'로 꼽힌다.
2001년 4월 탄생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의 이야기다. 고이즈미 정권 탄생의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다나카 마키코가 외교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외상으로 기용됐다. 당시 아들 부시 정권의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5월 초 새로 출발한 고이즈미 정권과 양국관계 조율 및 고이즈미 총리의 방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그런데 다나카 외상이 갑자기 약속했던 아미티지 부장관 면담을 취소했다. 알고 보니 외상 취임 때 축하 난을 보낸 사람들에게 답례장을 써야 하니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이에 일본 외무성 관료들이 경악했고 일부 언론은 외상이 미일외교의 핵심 인물을 냉대하는 것은 미일외교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비판 기사를 실었다. 그래도 당시엔 다나카의 국민적인 인기가 워낙 높아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이때 재팬 핸들러의 심기를 건드리고 외무성 관료들의 신뢰를 잃은 것이 다음해 1월 외상에서 경질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돼버렸다.
그가 중국과 군사분쟁을 무릅쓰며 대만 방문을 강행한 반중의 상징이라는 것을 떠나서도 펠로시 의장은 미국의 국가서열 3위이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이은 대통령 승계 2위의 핵심 인물이다. 더구나 하원의장은 미 정부의 예산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와 관련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하원이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다.이런 핵심 인사가 한국을 방문하는데, 대통령이 한가하게 휴가를 이유로 만나지 않는다 것은, 쉽게 말해 저절로 굴러들어온 보물을 발로 차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 전문 외교관들은 이런 중요성을 감안해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꼭 만나야 한다고 건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4일 오전 현재, 둘 간의 면담 소식은 없다.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불문가지다.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면담하지 않는다면 그가 행한 전례, 일관성에도 어긋난다.
비공개 모임이라고 하지만 곧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의 차관보급에 불과한 사람을 사적으로 술까지 나누며 긴 시간 동안 격의 없이 만난 것은 매우 파격이었다. 성 김은 5월 2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미국 쪽 배석자에도 끼지 못한 인물이다. 펠로시 의장은 한국정책을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에 끼치는 영향력 면에서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거물이다.펠로시 의장은 1일 싱가포르, 2일 말레이시아, 3일 대만, 4일 한국, 5일 일본을 방문한다. 이제까지 방문한 국가마다 모두 수뇌와 만났다. 싱가포르에서는 리센룽 총리,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스마일 사브리 야곱 총리, 대만에서는 차이잉원 총통을 만났다. 마지막 순방지인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날 예정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만 수뇌를 만나지 못하고 가는 셈이다. 국제사회에서도 한미관계에 무슨 이상 신호가 있는가 하고 바라보겠지만 당사자인 펠로시 의장도 이런 한국의 냉대를 마음 속에 깊게 담아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다나카 외상의 전례처럼 그 대가가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 짐작하기는 어렵다.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났느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윤석열 외교'의 기준과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차관보급인 성 김 대북특별대표를 스스럼없이 만날 정도로 실용외교를 중시한다면 펠로시 의장을 당연히 만났어야 옳다. 또 전임 정부의 친중 경사를 수정해 친미노선을 강화한다고 했으면 휴가를 반납하고서라도 펠로시 의장을 외면해서는 안 됐다. 기준과 일관성이 없다 보니 국익보다는 알량한 자존심 또는 유아독존식의 무모함으로 외교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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