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마을 처녀를 왕비로 만들어 준 나무 버드나무 한강 자전거 성낙선 기자
최근 한강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는 양버들이다. 간혹 그 이름이 '미루나무'로 표기돼 가끔 오해 아닌 오해, 혼란 아닌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름이야 어찌 됐건 지금 한강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 중에 가장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나무가 양버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버드나무와 우리와의 관계는 아마도 한반도에서 한민족이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오래 됐을 수도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우리와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내가 한강에서 양버들만큼이나 자주 인사를 주고받는 나무이기도 하다.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돌아다니다 보면, 버드나무가 여기저기 치렁치렁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가까이 다가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옛날에 아주 이름난 장수가 있었다. 그 장수가 왕건이라는 얘기도 있고, 이성계라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그 장수가 말을 타고 가다가 한 마을의 우물가를 지나가게 됐다. 때마침 목이 마르던 차에 장수는 우물가에서 그 마을 처녀에게 물 한 그릇을 청했다. 처녀는 장수에게 물그릇을 건네면서 그 안에 버드나무 잎을 따서 넣었다. 장수가 물을 급하게 마시다 사레라도 들까봐 걱정했던 거다.
한자인 '버드나무 류'는 버드나무 아래서 두 사람이 이별을 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가지가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사람들이 이별의 정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 사람들 곁에 서서 무언가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버드나무가 떠오른다. 이별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그 옛날부터 버드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였다. 지금도 버드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그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한강으로 산책을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한강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당연히 그 주인은 나무들이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한강은 상상이 가도, 나무가 존재하지 않는 한강은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