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턴 아버지, 어머니, 아내를 위한 멋진 저녁상을 차리겠습니다
"할배, 할매도 충분히 이해하실끼라. 50년 했으면 마이 했습니다. 기제사 안 지내는 것도 아니고 명절 차례 이제 그만하겠다는데 어떻습니꺼? 내가 이번 제사 때 할배, 할매한테 잘 말하께요. 제사 음식 준비하다가 엄마가 몸 버리겠다. 이제 고마하입시더."며칠 전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삿날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사를 합쳐서 한 날에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께 설, 추석 그리고 두 분의 기일에 맞춰 일 년에 2번의 제사와 2번의 차례를 모셨습니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떡집에 찹쌀을 맡기고 제철에 맞는 떡을 주문 제작합니다. 설날에는 떡국을 올리지만 추석 차례와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상에는 무나물, 고사리, 배추 나물, 콩나물, 박나물 등의 나물을 삶고 무칩니다. 그렇게 보름 가까이 제사상을 준비하십니다. 어머니가 생각나 전화를 드리니 예상대로 몸살이 나서 누워 계신다고 했습니다.50년 가까이 제사와 차례를 모셔왔지만 매번 이렇게 정성을 들이니 그때마다 크든 작든 몸에 탈이 납니다. 대충 음식을 준비하자고 해도 그게 아니랍니다. 제가 아는 후배 집에서는 차례라고 진짜 차와 곡식을 올려 예을 표한다고 해도 저희 어머니는 그런 게 아니랍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당신 죽고 나서 제 마음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에도 음식을 제사상에 놓다가 친척 어르신께 몇 번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제사상을 차리는 우리 집안이 그렇게 뼈대 있는 가문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사와 차례를 비롯한 유교문화도 지금은 전통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어차피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문화입니다. 제사와 차례 문화도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고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가가례란 말이 있습니다. 가가례를 풀이하면 집안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절차가 다르다는 뜻이라고 합니다.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희가 가정에서 진행되는 예절을 모아서 만든 책 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학파와 가문에 따라 변형되어 지금껏 제사와 차례 문화가 우리 전통인양 흘러서 왔던 것입니다. 주희가 1200년에 사망했으니 그가 죽고 나서도 800년 넘게 그가 남긴 예법이 중국도 아닌 한국에서 살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셈입니다."할배, 할매요. 이제 명절에 차례 지내던 거 올해 추석부터 안 지낼라꼬예. 명절에 차례 안 지내는 대신에 기제사 때 계속 어무이하고 정성스럽게 모시끼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