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는 5·18 때문에 생겨났지, 그 전에는 지역주의가 없었다. 📝장정일 (소설가)
피해자 서사를 중심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연구한 결과물은 많이 있지만, 가해자인 군인과 침묵으로 일관했던 방관자의 사정을 연구한 사례는 별로 없다. 곽송연의 〈오월의 정치사회학〉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다. 이 책은 “‘특별하게 잔인했던’ 가해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해답”이자 “왜 다른 어떤 도시도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지 않았나에 대한 정치사회적 설명”이다. 이승만은 자신의 반대자를 ‘빨갱이’로 몰면서 빨갱이 학살을 용인하고 부추겼다. 해방 정국에서 정치에 동원된 한국군은 1948년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에서 민간인을 학살했으며, 베트남전쟁에서도 같은 경험을 쌓았다. “따라서 이러한 학살에 대한 학습효과는 5·18이라는 또 하나의 정치적 학살 사건의 중요한 유인이 됐으며, 당시 가해자들의 행동 양식을 규명하는 데 주목할 만한 배경이 된다.
그때 전두환은 제1사단장을 맡은 지 막 1년3개월이 된 소장이었다. 본래 군단장급 직위인 보안사령관은 중장 이상의 장성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를 쓴 정아은은 이 파격적인 일화로 전두환 평전을 시작한다. “임명장을 넘겨준 순간, 156㎝의 왜소한 체구의 사내에게서 170㎝의 탄탄한 체구의 사내에게로 뭔가가 넘어갔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치명적인, 커다랗고 단단한 덩어리가. 사후에 벌어진 결과를 놓고 보면 박정희가 제 죽음을 예상하고 영혼의 일부를 건네준 듯한 느낌이 든다.” 18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던 권력자가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보안사령관 자리가 누구에게나 행운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두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날 새벽, 그는 동기생으로부터 쿠데타 소식을 전해 듣고 육군본부로 박정희 장군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