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이번 파리올림픽에는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이슈가 많았다. 세계적 화제는 여자 복싱의 성별 논란이었다. 생물학적 남성을 의미하는 ‘XY’ 염색체를 가진 이만 칼리프 선수가 올림픽 복싱
이탈리아 복싱 국가대표 안젤라 카리니가 지난 1일 프랑스 파리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66㎏ 16강전에서 알제리 이마네 칼리프에게 패한 뒤 울먹이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이번 파리올림픽에는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이슈가 많았다. 세계적 화제는 여자 복싱의 성별 논란이었다. 생물학적 남성을 의미하는 ‘XY’ 염색체를 가진 이만 칼리프 선수가 올림픽 복싱 경기에 출전했는데, 상대 선수가 주먹을 맞자마자 경기를 포기하며 논란에 불이 붙었다. 논란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해당 선수를 일방적으로 ‘가해자’ 내지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실체는 남성-트랜스젠더인데 여성을 가장해 이득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팩트부터 확인하자. 우선 이 사안은 트랜스젠더 이슈일 수 없다. 칼리프 선수는 성전환을 한 적이 없으며 일반적 의미의 ‘여성’으로 살아왔다. 그는 양성의 특징을 어느 정도 공유한 ‘간성’이며 그중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에 해당한다. 비슷한 사례로 대만 복싱 선수 린위팅도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간성은 전체 인구의 최대 1.7% 비율로 태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트랜스젠더’ 운운은 그냥 오류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출전 자격에는 문제가 없으며 이들에 대한 비난은 선수 학대 및 혐오 조장”이라고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사실 ‘트랜스젠더냐 아니냐’는 핵심이 아니다. 근본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범주적 사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여자와 남자라는 명확한 이분법으로 나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다. 많은 학자들은 방대하고 치밀한 연구를 통해서 생물학적 성별이 딱 두 종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왔다.
이들의 결론은 같은 곳을 향한다. ‘범주적 사고’는 자연적 사실과 동떨어진 반면, ‘스펙트럼적 사고’는 자연적 사실과 가깝다는 것이다.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는 과학이 곧 확정적 진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진지한 과학일수록 확정을 꺼린다. 반면 사이비일수록 확신에 차 있고 칼같이 구별 짓는다. 스펙트럼의 대표적 예는 무지개다. 우리는 무지개를 그릴 때 빨강, 노랑, 초록을 딱딱 구분해 칠하곤 한다. 하지만 진짜 무지개, 곧 빛의 산란을 관찰하면 각각의 색깔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없음을 알게 된다. 바로 그것이 퀴어 운동의 상징이 무지개인 이유다. 무지개는 단지 다양성만이 아니라 스펙트럼처럼 애매모호한 우리 존재의 은유다.그렇다고 스펙트럼적 사고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올림픽은 선별된 극소수가 격렬하게 경쟁하는, 매우 특수하고 능력주의적인 이벤트다.
스포츠가 여성과 남성 부문으로 나뉘는 이유 중 하나는 평균 근력 등의 성별 차이가 개인 차이를 능가한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차이는 1년 내내 컴퓨터게임만 하는 남자와 세계 최고의 여자 역도 선수를 비교할 때가 아니라, 같은 엘리트 선수 사이의 비교에서다. 그런데 간성이면서 여성인 선수와 평균적 여성 선수 사이의 신체 능력 차이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적다. 면밀히 조사해보면 그것이 평균적 여성 선수들 개인 차이보다 작을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건 전문가의 영역이며 비전문가들끼리 아무리 치열하게 토론해봐야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선수 간 접촉이 심하거나 복싱처럼 위험한 격투기 종목인 경우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은 분명 엘리트의 투기장이자 능력주의 과잉의 이벤트다. 그러나 동시에 지구촌 사람 모두에게 열린 축제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근대 올림픽에서 포용이라는 가치는 언제나 탁월함이나 공정함만큼 중요했다. 요컨대 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탁월함’을 추구해야 할 이유와 의무도 있는 것이다. 카테고리가 아니라 스펙트럼의 관점으로, 성별 이분법 바깥의 존재를 환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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