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바에서 하는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역사의 뒤 페이지]](https://i.headtopics.com/images/2023/6/4/sisain-editor/5285249828481481389899-5285249828481481389899-1665141569630994433.webp)
아버지는 집에서 곧잘 엔카를 들었다. 일제 시기 말 징용을 피해 산에서 숨어 지냈다는 분이다. 감수성은 종종 민족의식의 두꺼운 벽을 뛰어넘는다. 📝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다. 유신시대가 끝을 향하던 무렵이었다. 일제 시기에 태어나 황국소년으로 자라고, 황군으로 복무한 이들이 권부에 있던 시절이었다. 유신의 ‘마지막 날’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궁정동 안가에 모인 이들은 때로 일본어로 대화하고, 불려온 여자 가수는 일본 노래를 부른다. 꺾기 창법으로 유명한 엔카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히트곡 '북쪽의 여관에서'다. 영화적 설정이지만 무리한 것도 아니지 싶다. 이들이 뼛속까지 친일이었다고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감수성의 힘이 얼마나 질긴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실은 이번 글을 쓰다가 문득 기억이 났다. 담임선생님과 같은 해에 태어난 선친이 가장 좋아한 엔카가 '북쪽의 여관에서'였다. 아버지는 집에서 곧잘 엔카를 들었다. 일제 시기 말 징용을 피해 산에서 숨어 지냈다는 분이다. 박정희를 미워했다. 감수성은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어를 ‘국어’로 배운 세대다.
〈망향〉이라는 번안 제목이 꽤 어울리는 이유다. 식민지에 숨어든 제국 출신 백인 범죄자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서사가 식민지 조선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효석의 단편 〈여수〉에서 힌트를 찾아본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극장에 소속된 화가다. 다음 날 개봉되는 영화의 신문 광고지를 그리고 있다. 바로 〈망향〉이다. 미레유 발랭의 얼굴을 그리는데 마치 페페처럼 그녀와 연애라도 하는 것 같은 마음이 된다. 그리고 ‘애트랙슌’ 팀과 어울린다. 영화가 최고의 흥행물이던 시절, 한낮에도 꿈꾸기를 원하던 대중은 극장을 찾아 백일몽을 꿨다. 막간에 노래와 춤, 장기로 관객을 사로잡는 애트랙슌 팀은 흥행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 중 하나였다. 〈망향〉은 대작이었다. 극장주는 백인들로 구성된 ‘셀비안 쇼’를 초청했다. 하얼빈 기반의 유랑극단일 뿐이지만 아무튼 백인들이니 화제가 될밖에. ‘나’는 그들과 어울리며 가까워지고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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