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김창룡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과 함께 친일파 군인 백선엽을 띄우고 있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백선엽은 지난 7월 5일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선엽 동상 제막식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게 됐다. 동상이 된 그는 360도 회전하면서 대한민국 전체를 두루 살피고 있다.
헌병대 군무원이 된 그는 25세 때인 1941년에 관동군 헌병교습소에 입소했다. 그곳 교육을 이수하고 헌병보조원이 된 그는 같은 시기에 백선엽이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됐다. 백선엽이 만주국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에서 항일 투사들을 토벌했다면, 그는 일본군 헌병대에서 항일 투사들을 정탐하고 추적했다."1943년 싱안베이성을 중심으로 지하 공작을 펴던 중국공산당의 거물 왕진리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관동군 헌병대는 왕진리를 이용한 역공작으로 소·만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던 9개 지하 조직을 색출하고 조직원 50여 명을 체포했다. 이 공로로 헌병 오장으로 특진했다."
인생이 끝나는가 싶다가 극적으로 부활한 김창룡은 만주군 출신들의 도움으로 남한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도움으로 조선경비사관학교 3기를 졸업한 그는 국방경비대 제1연대 정보주임 보좌관으로 발탁됨으로써 첩보 업무를 다시 맡게 됐다. 그런 다음, 국군에 대한 숙정 작업에 참여했다.김창룡은"예리한 수사력의 안광"으로 남조선노동당 군사책 박정희를 색출해 검거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부류의 좌파만 잡아낸 것은 아니었다. 그가 추격한 좌파의 상당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제에 쫓기던 독립운동권 인사들이었다. 1949년에 김구가 암살된 뒤 암살범 안두희를 감형하고 군에 복귀시켰고, 예편 뒤에 후견인까지 했던 장본인이 김창룡이다. 독립투사 김구 암살에 관련된 사실은 해방 이후의 김창룡이 잡으러 다닌 사람들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김창룡의 본업이 해방 전이나 후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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