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주고 싶어도 용서할 상대가 없었다, 우리도 피해자이지만 당신도 또 다른 피해자라는 걸 알고 있다’ 하시더라고요. 남편과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42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기당천 초전박살’을 외치던 공수부대가 이렇게 용기가 없었다니…” 📝 나경희 기자
소심한 성격을 바꾸고 싶었다. 1975년 6월, 스물두 살이던 김귀삼씨가 특전사에 지원한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특전사 대원들이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모습도 부러웠다. “멋있잖아, 젊은 시절에.” 김씨가 베레모를 쓰듯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의 옆머리는 여전히 군인처럼 바짝 짧았다. 제3공수특전여단으로 배치된 김씨가 처음 참여한 작전은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었다. 1공수여단이 결사대를 꾸려 판문점에 들어가고 그가 속한 3공수여단은 후방에서 대기했다. “손톱이랑 머리카락을 잘라서 봉투에 넣었어요. 만약 내가 죽으면 그걸로 장례를 치르는 거야. 그때 다들 ‘우리가 전쟁 나면 이런 존재구나’라는 걸 실감했죠. 한번 쓰고 나면 없어질 용병이라는 걸.” 그는 1979년 10월 부마항쟁,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까지 굵직한 현대사마다 현장에 투입됐다. 당시 공수부대원은 최소 4년 동안 복무해야 했다.
“집에 와서 보니까 동생이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저 폭행도 내 전우들이 한 거 아니야. 동생한테 참 미안하지. 나한테 그러더라고. ‘형, 내가 삼청교육대에서 미친 척하면 병원에라도 보내줄까 싶어서 똥도 먹어봤다’고.” 5월21일 오후 3공수여단 12대대는 광주교도소로 이동했다. 김씨는 전날 끌려온 ‘포로’ 중 숨진 사람들을 전남대학교 뒷산에 묻고, 나머지 생존한 이들을 군용 트럭에 태웠다고 기억했다. 보통 양쪽으로 5명씩 총 10명이 앉아 타는 트럭인데, 70~80명씩 밀어 넣고 천으로 입구를 덮었다. “그 안에 최루탄을 한 발씩 던져 넣었어요. 이동하는 중에 뛰어내려서 도망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고. 도착해서 사람들을 내리는데 시신이 여럿 나왔대요. 출발할 때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인데. 그때 트럭에서 시신을 내리던 전우들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려. 아주 잔인한 모습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딱 이 생각이 들었어요. 이 나라 정권은 말 그대로 피를 먹어야지만 세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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