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민식당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 김병집이 어머니를 잃은 것은 1984년 9월24일이었다. ...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 김병집이 어머니를 잃은 것은 1984년 9월24일이었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의 희민식당은 어머니 전갑숙씨가 운영하는 작은 주점 겸 식당이다. 이곳에서 아이와 어머니, 보모 박씨, 그리고 여종업원 강명자씨가 함께 살았다.오후 1시 50분쯤, 가게 앞에선 건물주 정씨와 옆가게 OB맥주 종업원 이씨가 얘기 중이었다. 정씨는 이틀 전 희민식당 부엌 아궁이를 수리해뒀으니 불을 피우지 말라고 주의를 주러 왔다. 가게 안에 불이 켜져 있고 바닥에 깨진 유리가 떨어져 있었다.정씨는 가게로 돌아오던 박씨에게 물었다. 박씨는 뒷문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정씨가 안방 문을 열어보라고 했다. 피가 흥건한 바닥에 두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전씨는 거품을 물고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했다. 강씨는 숨을 쉬지 않았다. 옆 가게 이씨가 인근 파출소로 뛰어가 신고했다.
택시를 붙잡아 남자와 쓰러진 탁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탁씨는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은 건졌다. 남자는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남자의 옷 안에서 실탄 4발이 장전된 탄창이 나왔다. 백합미용실과 희민식당에서도 탄피와 탄두, 불발탄으로 보이는 실탄이 발견됐다. 모두 같은 것이었다.도심에서 연쇄 총기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비상이 걸렸다. 범인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남자의 몸에선 신분증이 나오지 않았다. 중상을 입은 피해자 탁씨는 희미한 의식으로 “처음 본 남자가 ‘손들어’라고 한 뒤 총을 쏘았으며 강도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사망한 남성의 벨트에는 폭약도 있었다. 가방 안에는 판건식 무전기 등이 발견됐다. 휴대품으로 보아 홀로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간첩으로 판명됐다. 경찰, 군, 안기부 등이 모인 합동정보신문조는 정확한 침투경로, 추가 범행 여부 등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계속했다. 살해 동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 범인의 주머니에서 희민식당 종업원 강씨 친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이 발견됐다. 수사기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는‘피해자들이 간첩 조력자이거나 포섭된 것 아닌가’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다.석달 전 사망한 김씨는 장모 병문안을 다녀온 뒤 처가 식구들과 병원 인근에서 돼지고기 찌개를 먹고 돌아왔다. 그 후 집에서 아들과 놀던 중 갑자기 답답하다며 배가 아프다고 했고, 종업원 강씨에게 까스활명수와 소화제를 사오라 해 먹었는데도 호전되지 않자 병원으로 가던 중 사망했다. 간첩이 벌인 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이 의심스러웠다.같은 날 오후 5시15분 무렵 경북 칠곡군의 한 묘지에 묻힌 김씨를 발굴해 현장에서 해부가 이뤄졌다. 부패가 심해 정밀 분석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부검의 목표는 독살 여부를 밝히는 것이었다. 김씨는 물론 사망한 피해자 전씨와 강씨, 범인도 부검에 들어갔다.
또 다른 의혹은 범인이 희민식당 범행 전 백합미용실을 찾았다는 점이었다. 백합미용실 주인 탁씨는 범인을 처음 본 사람이라고 했는데, 당일 정오 무렵 파마 가격을 물으며 미용실을 찾아왔다는 게 탁씨 친구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수사기관은 범인과 피해자를 엮는데만 실패한 게 아니었다. 범인의 옷에 해초가 묻었다며 해안을 통해 침투했다고 발표했지만, 나중에 해초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수배 전단을 돌리고 야산을 뒤졌지만 소득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