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13~15살의 소녀들을 군수공장으로 동원했던 근로정신대는 전시 미성년 여성 수탈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해방 77년이 되도록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전시 미성년 여성 노동 수탈 상징적 사건 널리 알려 근로정신대 피해자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30년간 재판 투쟁을 해온 양금덕 할머니. 시민모임 제공 “사죄를 받는 것이 소망이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살아볼라고 하요.” 일제강점기 때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로, 30년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재판 투쟁’을 하는 양금덕 할머니는 15일 와 만나 “나 아직 건강해. 포기 안 해”라고 말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13~15살의 소녀들을 군수공장으로 동원했던 근로정신대는 전시 미성년 여성 수탈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조선 소녀들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강재공업, 도쿄 아사이토 누마즈 공장 등에서 임금 한푼 못 받으며 강제노동을 했다. 해방 77년이 되도록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양금덕 할머니 등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소녀들이 1944년 6월께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왼쪽에서 일곱째가 양금덕 할머니.
1988년 12월 일본 나고야에 설립된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도식에 유족들이 참석해 오열하고 있다. 시민모임 제공 일본 법정 소송 첫발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일제 만행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그때부터 양 할머니는 숨기기만 했던 근로정신대에 관해 입을 열기 시작했고 행동에 나섰다. 운동가로서 정체성이 움트는 순간이었다. 1992년 2월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에 가입한 뒤, 그해 8월엔 ‘광주 천인소송’에 참여했다. 1994년 3월엔 일본 정부를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지부에 피고로 제소한 ‘관부재판’의 3차 원고로도 합류했다. 허나 일본의 변호사들과 연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번번이 패소했다. 2010년 3월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철수를 요구하며 눈보라 속에서도 의연하게 1인시위를 하는 양금덕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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